한국의 ‘국제 스누커 통’은?… 대기업 직원→대학교수→現 당구심판 이길남 [인터뷰]

 

요즘 국내에서 스누커 국제 동향에 밝은 ‘스누커 통’을 꼽으라면 아마 본지 ‘스누커 감상’ 필자인 이길남(67)씨가 거론될 것이다.

그는 국내에선 다소 생소하지만, 국제적으론 ‘월드스누커투어’를 필두로 대단한 인기의 당구종목 스누커에 관한 이야기들을 본지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전직 교수(가천대)인 그는 교수직 정년퇴직 수년 전부터 은퇴 후 취미로 당구를 택했고, 그에 앞선 대기업(기아자동차) 근무당시 해외에서 처음 접한 스누커를 “논문 연구하듯” 파보기로 했다고 한다.

세계프로당구스누커협회(WPBSA)에 직접 영문으로 문의하는 등 열성으로 쌓은 지식을 현재 대한당구연맹 공인심판으로서 적응 활용중인 그다.

나아가 이길남씨는 지난해 10월, 한국심판 최초로 스누커 본가 영국에서 열린 ‘빌리아드잉글리시오픈’과 ‘월드빌리아드챔피언십’ 심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이러한 전문성과 전직 덕분에 당구인들에게 ‘스누커 전문가 이길남 교수’로 통하는 그와 본지가 만나 그의 활기차고 바쁜 당구인생 얘기를 들어봤다.

인터뷰에서 그는 “누군가 한국의 스누커 역사를 논할 때, 제 이름이 거론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란 바람을 남겼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Q. 자기소개 부탁한다.
=6년차 대한당구연맹 공인심판이자, 경기력향상위원회 위원, 연맹 이사로 활동중인 이길남이다. 장애인당구협회 심판이며, 장애인당구지도사 자격증도 보유하고 있다.

Q. 당구심판 전, 직업이 다채로운데.
=80년대~90년대 초에 기아자동차에서 15년간 일했다. 회사가 한창 잘나갈 때다. 무역학과를 나온 저는 당시 회사에서 석사과정까지 지원해줬다. 그리고 석사과정을 호주에서 공부했는데, 그때 스누커 테이블을 처음 접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벌써 30여년이 흘렀다. 세월 참 빠르다. 하하.

호주 유학 후 귀국해 박사학위 취득에 매진했고 결국 성공했다. 전공은 업무 경험을 살려 무역학을 그후 퇴직해 2년간의 시간강사 생활을 거쳐 1999년 교수 임용돼 20년 넘게 교단에 섰고, 지난 2022년을 끝으로 정년퇴임 했다.

Q. 전직 교수가 당구에 빠진 까닭은.
=퇴직 후의 소일거리 찾다가 50년 전인 중2때 처음 접했던 당구가 생각이나 당구연구에 매진하게 됐다. 요샌 당구만 치며 살고 있다. 하하. 현재 3쿠션 대대점수 22점이며, 가끔 포켓볼 스누커도 친다. 심판 수행에 적잖이 도움이 된다.

Q. 당구 종목 중에서도 스누커 전문가로 유명하다.
=박사학위 취득하듯 당구를 열심히 파다 보니 스누커가 국제적으로 대단한 인기 당구종목이란 걸 알게 돼 더 많은 것들이 궁금해져 정보를 수집해갔다.

하지만 국내엔 관련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세계프로당구스누커협회(WPBSA) 홈페이지에서 규정집을 찾아 공부해야 했다. 통상적으로 WPBSA 룰이 국제규칙으로 통용된다. 현재에는 지난 2019년 8월 개정된 규칙이 적용되고 있다.

Q. 국제 스누커단체에 직접 이메일로 문의하기도 했다고.
=하나에 꽂히면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스누커 공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확한 해석이 불분명한 룰을 발견하면 해외에 있는 단체에 직접 영문으로 ‘해당 룰의 정확한 의미’ ‘심판의 옳은 판정’ 등을 이메일로 문의해 답변 받아냈다.

Q. 문의 후 단체측의 답변은 얼마만에 오던가.
=보통 한 달, 길면 2~3달 걸려 오더라. 단체쪽에선 제 질문보다 “한국에서도 스누커 치는가?”라며 한국당구에 관해 더 궁금해하더라. 이에 한국의 캐롬은 국제 톱, 포켓볼은 중간 이상, 스누커는 너무나도 열악한 수준이라고 설명해줬다.

 

지난해 11월 ‘서울3쿠션월드컵’서 심판업무 수행중인 이길남씨. (사진=대한당구연맹)

 

Q. 위 과정으로 WPBSA 측과 맺은 특별한 인연도 있다고.
=이메일을 숱하게 보내다 보니 나중엔 단체의 공식 채널과는 별개로, 그곳 관계자와 개인적으로 친해져 직접 답변을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그 사람은 WPBSA 심판자격 부여권을 가진 ‘크리스 꾸움’이다. 월드 빌리아드 이사이기도 한 그에게 “(내가)영국가서 심판 볼 수 있는가?” 물어보니, 가능하다고 해 스누커 본고장인 영국에서 선수권대회 심판으로 나서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다.

(이길남 교수는 지난해 10월, 영국에서 열린 ‘빌리아드잉글리시오픈’과 ‘월드빌리아드챔피언십’ 심판으로 뛰었다. 그리고 금년 4월에도 아일랜드에서 열리는 월드 매치플레이 챔피언쉽에 심판으로 참가할 예정이다.)

Q. 영국 현지에서 체감한 스누커 인프라는.
=일단 무척 부러웠다. 우리나라는 시도 연맹 대표 선수조차 연습장이 없어 애를 먹는 경우가 있는데, 영국은 지역별로 스누커 테이블이 쫙 깔려있다. 테이블 상태도 매우 좋다. 축구로 비유하면, 우리나라는 맨땅이지만 영국은 양질의 잔디가 심어진 느낌이랄까.

영국에서도 스누커 클럽은 도심 중심지보단 주로 땅값이 싼 외곽에 자리해 있더라. 테이블 대수는 보통 한 클럽당 10대 이상, 클럽 규모는 200~300평 수준이다. 대게 연회비를 받는 회원제로 운영되며, 이용료는 1시간 기준 20파운드(한화 약 3만 5000원) 안팎이다. 영국의 살인적인 물가를 고려하면 절대 비싸지 않은 취미생활 비용이다.

클럽 내에선 스누커뿐만 아니라 포켓볼, 영국 인기 스포츠인 다트도 많이 즐기더라. 가볍게 술도 한잔씩 하면서.

Q. 영국은 인프라 만큼이나 스누커 선수층도 두텁다고.
=그럴 수밖에 없다. 1968년 이후 세계최고의 프로당구 리그로 군림해 온 ‘월드스누커투어’ 는 금년시즌 24개 투어의 대부분, 특히 메이저대회(마스터즈, UK챔피언십, 월드챔피언십)가 영국에서 열리는데, 이 투어 출전선수 128명 가운데 영연방(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 선수만 70여명에 달한다.

영국을 포함, 국제 스누커계 스타중의 스타로 로니 오셜리번이 꼽히곤 한다. (오셜리번은 2001, 2004, 2008, 2012, 2013, 2020, 2022 세계선수권 우승자이며, 월드스누커 투어 누적상금만 한화로 200억원에 가까운 전설적인 선수다)

 

서울3쿠션월드컵 당시, 경기 중 공 점검 작업중인 이길남씨. (사진=대한당구연맹)

 

Q. 아시아 국가인 중국도 스누커 강국이다.
=영연방 선수에 이어 중국이 두 번째로 ‘월드스누커 투어’ 선수가 많은 나라다. 이번 시즌에 중국에서 3번의 월드스누커 투어가 치러졌다. 그만큼 당구인기가 대단히 높은 나라다. 월드스누커 투어 강자인 딩준후이 등 월드클래스 수준의 당구 슈퍼스타를 여럿 배출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겠다.

듣기론 싹이 보이는 어린 친구들이 학업을 포기하고 당구에 매진할 정도라고. 심지어 좋은 여자유망주도 꽤 있다. 대표적으로 중국 스누커투어 당시 와일드카드로 출전한 올해 20살 바이 위루(Bai Yulu)를 꼽는다.

(바이 위루는 2019 세계스누커주니어선수권 챔피언, 2023 세계스누커선수권 준우승, 같은해 WPBSA 브리티시오픈 우승을 차지했다)

Q. 최근 중국은 헤이볼 저변확대에 총력중인데. (헤이볼은 스누커와 포켓볼을 변형해 만든 중국식 당구종목)
=사실이다. 성장속도가 무섭고, 최근 중국의 글로벌 당구용품업체 조이빌리아드가 세계포켓볼협회(WPA)의 헤이볼대회 지원 명목으로 80억원짜리 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양측이 월드게임 아시안게임 등 ‘국제대회에 헤이볼 포함’ 건에도 협의가 끝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가운데 저는 국제헤이볼협회(IHPA)와 스누커단체인 WPBSA를 같은 결에 묶였다는 생각이다. 일례로, 영국 스누커투어에서 숱한 우승 등으로 족적을 남긴 스티븐 헨드리가 IHPA 명예회장이며, 스누커투어 스타인 딩준후이가 IHPA 홍보대사다.

Q. 그럼 헤이볼 규칙도 공부중인가.
=기본적인 내용은 모두 파악한 상태다. 그러나 소위 ‘글로 배운’ 수준이다. 자세한 내용은 협회에 문의해봐야 하고, 직접 대회 현장에서 보고 배워야 한다.

오는 5월 광저우 국제당구박람회도 좋은 기회가 되겠다. 조이빌리아드 부스를 방문헤 우리나라 스누커와 헤이볼 간의 발전을 위한 협력채널을 구축해 보려고 한다.

Q. 이어 한국 스누커의 현실을 짚어본다면.
=우선 선수 숫자가 많지 않다. (지난해 대한당구연맹 대회 출전선수 총 28명) 선수육성은 곧 돈이다. 보통 국제대회 개최 4년 앞두고 관련종목 육성금이 책정된다. 이에 당구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2030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을 4년 앞둔 2026년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를 계기로 어린 선수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Q. 이러한 내용들을 큐스포츠뉴스를 통해 알리고 있는데.
=주제 선정이 쉽지 않다. 그러나 고민의 고민을 거듭해 독자분들에게 꼭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하고자 한다.

Q. 누군가 스누커를 알고자 한다면.
=언제든지 찾아오시라. 만사 제치고 알려드린다. 식사 대접하면서라도 밤늦게까지 알려드릴 수 있다. 또 스누커를 직접 쳐보고 싶다면, 박승칠아카데미(서울 영등포구)에서 쳐보며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Q. 2024년도 및 향후에 이루고픈 목표와 바람은.
=대한당구연맹 이사로서, 우리 심판들을 국제대회에 정식 파견하는 데 힘 보태고 싶다. 국제대회 시 선수뿐만 아니라 심판도 연맹이 지정해 파견할 수 있다더라. 경비는 항공료만 드는데, 이는 당사자인 심판들이 부담하면 된다. 가까운 중국은 100만원 미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희망을 밝힌다. 한국 스누커가 월드클래스로 성장 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후에 누군가 한국 스누커 역사를 논하는 책을 쓸 때, 훌륭한 선수들과 함께 내 이름 석자가 기록된다면 더 이상 바랄 나위 없겠다.

 

[이상연 기자/큐스포츠뉴스 취재부장]
기사제보=sunbisa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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