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환자의 리포트] 대대 C지에 대하여(2)
지난 연재를 통하여 최근에 등장한 대대용 라사지 C지에 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글 이후 많은 분이 여러 문의와 의견을 주셨기에 다시 한번 그 대대 C지가 가지고 있는 위험성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4구로 중대에 입문하는, 당구 초심자 혹은 입문자들이 줄어들게 된 결정적인 이유를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아마도 이전과는 다르게 선택의 폭이 넓어진 놀이문화가 가장 큰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처음 당구를 접했던 80년대만 하더라도 놀거리의 종류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더구나 여러 명의 성인 남성들이 큰 부담을 느끼지 않고 아무 때나 놀 수 있는 종류는 더욱 그랬었죠.
당구가 딱 맞았습니다.
심한 운동량이 필요하지 않으면서 날씨 등 기후와도 큰 상관이 없고, 여럿이 함께 즐길 수 있으면서도 입문이 쉬웠으며, 무엇보다 재미가 있으니까요. 이르면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당구에 입문했던 다른 분들에 비해서 저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던 시절에 친구들을 따라 처음으로 당구장에 가봤습니다.
거짓으로라도 쾌적하고 멋진 공간이었다고 말할 수 없는, 후줄근해 보이는 당구장이었지만, 공과 공이 부딪치는 소리, 그리고 득점할 때의 쾌감 등의 이유로, 저 역시도 밤에 자려고 누우면 천장이 당구대로 보이고 천장의 구석이 당구대의 코너로 보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당구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이러했던 당구장 영업의 최전성기는 아마도 PC방, 노래방, 바다 이야기 등의 도박장, 스크린 골프 등등의 순으로 다른 놀거리들이 등장하면서 저물어가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 대한 말씀은 이미 이 리포트를 써오는 20여 년간 여러 번 말씀을 드렸었고요, 오늘은 당구에 유입되는 인구가 줄어드는 데에 또 다른 심각한 이유가 있다는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바로 C지의 등장입니다.
이전 연재에서 말씀드렸던 바와 같이, 당구대의 라사지는 양모(Wool)의 함유량에 따라 그 등급이 정해지며 양모의 함유량이 높은 것에서부터 특지 – A지 – B지 – C지 등으로 나뉘게 됩니다. 당연히 고급지일수록 양모의 함유량이 많아 가격이 비싼 대신 내구성이 약해 찢어지거나 펑크가 나는 일이 많으며, C지로 갈수록 나일론이 많이 함유되어 가격이 싸지만 튼튼해서 내구성이 좋습니다.
문제는 그 ‘공이 구르는 모양’입니다.
모든 등급의 라사지가 똑같다면, 다시 말해 모든 등급의 라사지 위에서 굴러다니는 공들의 구르는 모양이 같다면 누가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고급지를 사용할까요.
당구장이라는 곳이 사람들의 여가 생활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 곳이 아니고 각각의 생계를 위한 생업입니다. 모든 등급의 라사지가 똑같다면 당연히 모든 당구장에서 저렴한 C지를 사용하겠지요.
일반화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저렴한 C지를 사용하는 당구장들은 초보자들이 많은 곳인 경우가 많습니다.
‘초보자가 뭘 알아?’ 하며 저렴한 것을 위주로 선택하게 되는 거죠. 초심자일수록 라사에 데미지를 줄 확률이 높은데 낮은 등급의 라사지일수록 내구성이 좋으니 이를 무조건 나쁘다며 당구장 업주를 비난할 수는 없겠지요.
문제는 그 초심자들이 ‘바로 이 C지 때문에, 당구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고 떠나간다’는 것입니다. 공이 양모 위를 우아하고 부드럽게 ‘굴러’다니는 게 아니라, 나일론 천 위를 ‘미끄러져’ 다니는 것이 당구의 전부인 줄 알고, 그것이 당구가 가진 매력의 모든 것인 줄 안다는 것이죠. 당구의 맛을 느끼고 당구라는 고상한 취미가 몸과 뇌리에 스며들기 전에 잠시 왔다가 떠나갑니다.
이미 당구의 아름다운 맛을 느낀 분들은 의외로 이것이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왜냐면 이미 더 고급 라사지에서 플레이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칼럼을 써온 20연 년 동안 몇 번인가 라사지에 대한 글을 쓰면서, ‘어쩔 수 없이 C지를 사용해야만 한다면, 바닥지는 C지를 쓰더라도 쿠션을 감싸는 쿠션지만이라도 특지를 사용하시라’ 권해드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대당 라사지 가격이 다소 더 높아지더라도 공이 굴러가는 최소한의 모양을 내줄 수 있는 편법이었습니다.
오래전의 제 첫 기억과 같이, 우연찮은 기회로 처음 당구장을 방문한 초보자가 당구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 채로 ‘별거 아니네’ 하며 한두 번 만에 당구를 떠나게 됩니다. 아니 자리한 적이 없으니 떠난다는 표현도 지나치네요. 당구를 스쳐 지나가게 됩니다.
아예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당구장에 와볼 가능성이 있지만, 한두 번 왔다가 ‘재미없네’ 하고 떠나간 사람이 다시 오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거기에는 C지의 역할이 지대합니다. 그리고 정상적이지 않은 요금 체계로 인한 당구장 경영 악화는 점점 C지의 영향을 커지게 하며 그것이 우리 당구의 목을 쥐게 된 것이 냉정한 현실입니다.
본론, 대대 C지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현재 우리 당구의 대세는 세계적인 추세와는 다르게 캐롬, 그중에서도 3쿠션 종목에 치우쳐 있습니다. 3쿠션을 즐기는 분들이 중대를 거쳐 대대에 입문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세계 규격에 맞는, 그리고 TV에 나오는 선수들이 경기하는 그곳에서 자신도 플레이해보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높은 수준의 선수들이 구사하는 그 아름다운 공을, 다소 확률은 부족하더라도 자기 역시 해보고 싶은 욕심이 그 근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대에 C지를 깔면, 당연히 당구대 한 대당 소요되는 교체 비용을 줄일 수 있으며, 어떤 업주님들은 그것이 이익이라 생각해서 C지를 씁니다. 하지만 중대에서 일반 초심자들이 뒤돌아 가버렸던 것처럼, 아니 어쩌면 그보다 심하게 동호인들이 이탈하게 될 것입니다.
가뜩이나 선수들보다 수준이 낮은 동호인들인데, 장비의 한계 때문에 자신이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그 공이 구현되지 않는다고 하면, 당연히 실망할 수밖에 없는 까닭입니다.
중대용 C지의 전례에 빗대어 대대용 C지를 위험하다 말씀드리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소수의 당구장이 대대에 C지를 사용하면 손님들이 그 당구장을 떠나 대대가 설치된 다른 당구장으로 갈 것입니다. 만약에 많은 대다수의 당구장이 대대에 C지를 사용하게 된다면, 손님들은 당구 자체를 떠날 것입니다.(010-3366-5603)
[방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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