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대형 당구용품업체인 ‘조이빌리아드’(이하 조이). 이들이 국가의 전폭적인 푸시까지 받으며, 자체 고안한 당구 종목 ‘헤이볼’을 내세워 규모-상금 모두 메머드급으로 치르는 당구대회. ‘조이컵 헤이볼 마스터즈’다.
지난 4월 26일~5월 17일, 그 대회의 왕중왕전 격인 ‘제13회 조이컵 헤이볼 마스터즈-그랜드 파이널’이 중국 청두에서, ‘우승상금만 10억원’을 내걸고 크게 펼쳐졌다. 주최 측인 조이의 초청을 받아 대한당구연맹에서는 나(이근재, 연맹 선수위 부위원장)와 허해용 연맹 수석부회장이 그 현장을 견학했다.
견학소감부터 말하자면, 헤이볼의 미래가 밝은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조이 측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단순한 대회 개최 수준이 아니었다. 국제종목 편입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현장서 미팅한 조이 측 관계자는 “헤이볼 종목을 ‘2030 도하 아시안게임’ 종목으로 포함시키는 데 성공(공식발표는 아직)”했다고 확언 했다.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들은 ‘2032년도 올림픽’(호주 브리즈번)’ 종목 진입을 정조준 하면서, 아예 현지에서의 투어 개최방안을 적극 모색중이었다. 이를 위해 테이블 등의 용품을 대량으로 호주 현지에 무료 공수한다고 했다. 조이 측 관계자의 전언이다.
당구의 올림픽 입성. 헤이볼로 그것이 이제는 현실적인 이야기가 된 형국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요즘 ‘2036 전주 올림픽’ 유치를 위한 물결이 일렁인다. 그것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조이 측은, 우리 연맹 측에 “(유치 시)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까지 내놓았다.
현재 조이 측은, 전 세계를 무대로 헤이볼 보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96개국. 이번 청두 대회 출전국 수다. 당구를 치는 대부분의 나라가 거의 다 나온 셈이다. 게다가, 거리가 멀거나 경제적인 사정이 여의치 않은 국가의 선수는 조이 측이 직접 초청해 참가국 수를 늘렸다.

이 흐름에서 한국도 중심 타깃 중 하나다. 조이는 한국 여자 선수들에 대한 관심이 유독 컸다. 과거 김가영과 차유람의 시대를 지나, 현재는 한소예·이하린 등 후배 세대로 중국 현지에서의 ‘한국 여자선수 팬덤’이 형성돼 그 맥을 잇고 있었다.

이에 더해, 조이 측은 이미 한국 시장 진출을 위한 조사에 착수한 지 꽤 됐음을 알게 됐다. 헤이볼 종목을 국내에 들여오는 데 대단히 적극적인 태도였다.
헤이볼의 세계화. 그것을 향한 강한 의지를 실감나게 느낄 수 있던 이번 청두 대회였다.
우선 규모에 대단히 큰 힘을 줬다. 테이블만 약 150대. 경기용과 연습용을 합친 숫자다. 연습 테이블만 60대, 그것도 무료 개방이다. 본선 경기는 별도 체육관에서 32대 규모로 진행되며, 예선과 본선 장소를 나눈 것도 이 대회의 위용을 실감케 한다.
규모만 따지자면, 대한당구연맹 체육관 대회의 4~5배에 달한다. 나로서는 생경한 광경이다. ‘당구 올림픽’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었다.

메인테이블은 단 한 대. 입장식이 치러지는 거대한 공간 한복판에, 그 단 하나의 테이블이 놓였다. 관중석도 예사롭지 않다. 일반 플라스틱 의자가 아니라, 두툼한 쿠션의 고급 좌석이다.
이 거대한 판에, 한국은 16명의 선수가 출전했고, 그 중 13명이 본선에 진출했다. 그중 박용준(전남당구연맹) 선수가 최종 5위에 올라 한국 헤이볼 실력이 절대 녹록지 않으며, 세계 정상권으로의 진입이 충분히 가능한다는 점을 인지시켜 한국 당구계의 위상을 높였다. 상금은 3,600만원이나 손에 쥐었다.

주목할만한 호성적이다. 헤이볼 전문 선수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낸 성과라서다. 과거엔 2~3명이 ‘맨땅에 헤딩하듯’ 출전하던 게 현실이었다. 이제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다. 연맹 차원의 조직적 지원 없이, 선수들이 스스로 뛰어들어 이뤄낸 결과라 더 값지다.
이런 흐름 속에서, 대한당구연맹의 종목 체계 변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현 집행부가 강조하는 ‘전 종목 균형 발전’이라는 기조와도 맞닿아 있다. 헤이볼은 어린 선수들이 접근하기 쉽고, 무엇보다 상금 규모가 크다. 엘리트 구조로서도, 흥행 포인트로서도 매력적인 종목이다. 연맹 관계자들은 “이제는 차차 준비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한국 당구계는 지금 분기점 위에 놓인 형국으로 판단된다. 그 변화의 중심축이 헤이볼이 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글-사진=이근재 스누커 선수/대한당구연맹 선수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