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가족]② 딸의 ‘재도약’ 위해 ‘도약대’ 자처한 아버지… 박승칠-박은지 부녀의 애틋한 ‘스누커·포켓볼史’

 

[편집자 주] 냉엄한 스포츠 판에서 따뜻한 휴머니즘을 찾는 대중에게 흔하지만 높은 확률로 감동을 주는 소재가 있다. 바로 가족 이야기다. 100라는 당구계서도 그간 숱한 감동의 가족스토리가 써졌다. 그 역사들을 큐스포츠뉴스가 당구가족시리즈로 소개한다.

 

‘당구가족’ 두 번째 주인공 힌트. 포켓볼 국내 톱랭커로서 세계무대 3위까지 꿰찼던 딸. 스누커로 태극마크 달고 국제무대 누빈 아버지. 큐스포츠뉴스 독자들이라면 대번에 답을 맞혔을 것. 그렇다. 박승칠-박은지 부녀다.

현재 딸 박은지는 하루의 대부분을 최근 부녀가 오픈한 아카데미 겸 클럽 ‘VIP 비즈니스클럽’(서울 영등포구)에서 나고 있다. 밤엔 연습장(김포시)으로 향한다고. 아버지 박승칠은 같은 지역 내 아카데미와 이곳을 매일 수시로 드나든다고 한다.

이에, 부녀의 동선 교집합점인 ‘VIP 비즈니스클럽’에 인터뷰 테이블을 꾸렸다. 5분여의 어색한 침묵이 깨지자, 서로를 향한 애정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딸은 아버지의 50년 넘게 변치 않는 당구열정에 연신 존경을 표했고, 아버지는 딸의 20여년 당구사에서 미처 매만지지 못한 순간들을 인터뷰를 통해 어루만져줬다.

“우리 (박)은지”와 “우리 아빠(박승칠)”로 서로를 칭하며 소위 ‘꿀 떨어지던’ 부녀의 당구사를 파헤쳐본다.

 

 

재도약하려는 36세 딸

도약대되려는 71

부녀에게 근황을 묻자 먼저 딸이 답했다. 올해로 선수데뷔 19년차, 36세 박은지(전북당구연맹)의 최근 수년간은 “힘들었다”로 정리됐다.

‘포켓볼 여제’ 김가영이 아직 당구연맹에서 뛰던 시절에도 랭킹 1~3위권 ‘톱랭커’였던 그가 건강문제·성적부진·우울증 등 복합적인 이유로 수년간 끙끙 앓았다고 했다.

“심신이 힘들어지자, 인간관계에서 오는 회의감까지 엄습했어요. 다행히 주변 도움을 받아 나아지는 중이에요. 지금은 그 힘든점들을 ‘이 나잇대에 겪을 성장통’쯤으로 치부한 채 마음잡고 열심히 연습 중이에요”

이런 딸에 대한 걱정이 아버지의 최근 근황인 눈치였다. 다만, 믿음을 내포한 염려였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때부터, 71세인 현재까지도 현역 스누커선수이자 지도자인 그의 눈엔 딸의 반등은 충분하다고 남을 일이었다.

“여자포켓볼 레전드인 엘리슨 피셔 보세요. 환갑이 가까운 지금도 국제무대를 호령해요. 은지 별명이 ‘퍼팅머신’이라죠. (공을)넣는 건 국내 탑급이라고 봐요. 부족한 건 포지션 플레이입니다. 수구 다루는 솜씨와 직결되는 사안이죠. 그래서 최근엔 3쿠션을 쳐 수구 콘트롤을 연마토록 하고 있어요.”

그간 수많은 문화생을 배출한 박승칠이다. 이완수(현 인천시체육회 당구팀 감독) 최솔잎 권보미 진혜주 이하린(이상 포켓볼) 등이 그를 거쳐 내로라하는 선수로 우뚝 섰다. 이런 그가 최근 딸을 제자 삼은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싫은 사람이 아빠

사실 부녀의 ‘사제관계’ 형성은 이번이 두 번째다. 딸이 중2때인 지난 2002년 맞은 첫 스승이 바로 아버지다. 스누커선수 부친의 권유로 딸은 스누커로 당구에 입문했지만, 곧 포켓볼로 종목을 전환한다.

이는 국제적인 인기 종목으로 승부 보겠다는 복안이었다. 당시 아버지가 강조하던 ‘낮은 자세’가 아직도 딸의 당구실력 밑바탕이 되고 있다고 한다. 좋은 기본기를 탑재하게 된 것. 그리고 딸은 고1때 선수의 길을 택해 무섭게 성장, 국내 톱랭커로 성장하기에 이른다.

이 대목에서, 딸의 선수등록 초창기(2010년대 초)로 부녀의 기억을 되돌려봤다. 20대 초반의 선수 박은지와 열성적인 스승 박승칠의 의견이 한창 충돌하던 시기다. 각자의 당구관이 대립해서다.

당시를 떠올리며 “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아빠”라고 답한 적 있다는 박은지다.

이에 아버지는 다소 충격받은 얼굴로 “그런줄 몰랐다”며 딸을 지긋이 바라봤다. ‘최고의 스승은 연습’이란 지도철학이 당시에도 유효했고, 이 점이 “(딸에게)압박감으로 작용했을 것”이라 추측할 뿐이었다.

하지만 딸은 씨익 웃어보이며 “지금은 당시 아버지의 지적들이 충분히 이해된다”며 부친의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덧붙여 “아버지만큼 쉽게 설명하는 선생님은 드물뿐더러, 그 지도열정과 선수로서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게 최근의 심정”이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곤 아버지는 애써 미소를 감췄지만 입꼬리가 쓱 올라갔다.

 

 

아빠의 당구열정은 아직도 활활, 존경해요

국제대회 시상대 선 딸 보자, 가슴 벅차

딸의 아버지 자랑은 계속됐다.

“선수 박승칠의 당구경력이 약 50년이에요. 그간 당구를 사랑하지 않던 아버지를 본 적 없어요.” 이 말을 전하며 박은지는 직접 촬영했다는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전국대회 3등 상장을 들고 선 아버지였다.

숨길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묻어난 아버지가 짠하면서도, 적잖은 나이에도 전국대회를 누비며 상장을 수집중인 아버지가 자랑스럽다는 딸이다. 이런 복합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해당 사진을 보노라면 가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또르르’ 흐른다고 했다.

“연세 탓에 (경기하는 게)힘드실텐데. 게다가 스누커는 경기시간도 긴 편이잖아요. 그럼에도 아버지는 ‘힘들다’ 불평한 적 없으셔요. 당구에 관한 열정을 표현하면 아직도 활활 타오르는 불꽃과도 같아요.”

이런 딸의 멘트에 아버지는 “고맙다”는 말 대신 뭉클했던 추억의 조각들을 펼쳐놓았다. 딸이 20대 중반 시절, 세계9볼선수권 출전당시 기라성 같던 중국 선수들을 상대로 선전하던 순간이었다.

“대회장을 꽉 채운 관중들이 은지의 플레이에 감탄하더라고요. 얼마나 짜릿하고 흥분되던지.”

이어 지난 2017년, ‘구리 세계포켓9볼대회’의 추억도 등장했다. 당시 딸은 4강에 올라 국내외 포켓볼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아쉽게 4강서 패했지만, 시상대에 선 딸의 모습에 “이루 말할 수 없이 가슴이 벅차올랐다”는 소감을 전하는 아버지의 눈은 자랑스러운 감정으로 가득 찼다.

 

 

“당구, 우리 가족의 달란트”

부녀에게 당구란 무엇일까. 아버지 박승칠은 ”달란트“란다. 특히, 자신에게 당구는 “직업이자,  처음 큐 잡은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수십년간 즐기고 있는 취미이며 삶”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 삶의 모습을 지켜봐온 딸도 “아빠처럼 불타오르는 열정과 함께 부족했던 독기까지 품고” 부친의 길을 따라가려고 한다. 당구와의 극심한 권태기를 겪은 뒤 새로 열정을 활활 지피는 중이라는 게 박은지의 설명이었다.

이런 각오 때문일까. 박은지는 인터뷰 며칠뒤 ‘제1회 포켓9볼 한국오픈’ 예선을 통과, 8강에 진출했다. “이 악물고 존경받는 선수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각오 직후 보여준 결과였다.

아울러, 이 대회에는 박은지의 동생, 박승칠의 막내아들 박규서(33)도 출전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선수출신 동호인이다. (남매는 함께 ‘KBF 당구 디비전 리그’ 포켓 D3 리그에서 허세양, 김범서와 충남당구연맹 A팀으로 활약)

 

‘제1회 포켓9볼 한국오픈’에 출전한 박은지(오른쪽)와 동생 박규서.

 

인터뷰 말미에 두 사람은 “올시즌 전국체육대회에 전북대표로 함께 출전한다”고 전했다. 딸은 선수로, 아버지는 지도자로 배석할 예정이라고.

이 말을 마친 부녀의 눈은 자신감과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자신감은 딸의 눈에서 더 강했고, 이런 딸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은 기대감으로 가득 차 보였다.

 

[이상연 기자/큐스포츠뉴스 취재부장]

기사제보=sunbisa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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