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오전, 40대 이상 여성 21명이 경기도 일산 자이언트당구클럽에 집결해 며칠 이른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만끽했다.
‘징글벨’ 등 캐롤이 흥겹게 흐르는 가운데, 머리에 성탈절 분위기 물씬 나는 모자를 쓰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직접 챙겨온 음식과 다과를 들며 수다를 즐겼다.
그런데 당구장에서 웬 크리스마스 파티일까? 알고 보니 이 행사의 정체는 당구대회. 일산지역에서 유명한 12년차 포켓볼 강사 구승미씨 주도로 열린 ‘2023 에잇볼 포켓볼대회 왕중왕전’이었다.
참가자들은 ‘구승미의 신나는 포켓볼 교실’ 수강생들. 한해동안 초급반 1~3레벨을 거쳐 연수반에 진입한 9명이 B반, 최대 5년 이상 연수반에서 활동한 11명이 A반으로 각각 나뉘어 우승자를 가렸다.
‘수강생 간의 화합’이 이날 대회의 궁극적 취지. “언니랑 붙으면 나 질텐데?” “아휴~ 오늘 이기려면 어깨 잘 풀어야지” 등 터져나온 각오들로 짐작했을 때, 참가선수들은 ‘마냥 즐기는 대회’는 사양하는 듯했다.
오히려 개인큐 등을 미리 체결하고 테이블 상태를 살피는 등 개인적으로 전열을 가다듬는 참가자들. 그중엔 한국여자포켓볼 강자(랭킹 10위)로 유명한 권보미 선수의 어머니 윤지우(61)씨도 보였다.
“딸 응원만 다니다 지인의 소개로 올해부터 포켓볼을 배웠다”는 윤 씨는 “이제 딸의 마음을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며 웃어 보였다. 더 열심히 배워 강좌 외 대회에도 도전해볼 생각이라고.
윤씨와 달리 이 강좌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된 예도 있다. 수강생 중 막내 연령대인 이연재(43)씨가 그렇다. 우연히 한 펍에서 포켓볼을 접하고는 흥미가 생겼고, 제대로 배우고 싶어 수소문 끝에 이 강좌를 알게 됐다고 했다. “공 치는 재미와 언니들 만나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는 이 씨다.
두 명의 사연을 듣는 사이, 대회 첫 경기가 거의 끝나갔다. “아이참~ 긴장돼 팔이 떨려서 8번공을 넣어버렸네요. 호호” 유경숙(52) 대한당구연맹 공식심판의 푸념이었다. 올 4월, 연맹 공식심판 자격 취득을 위해 포켓볼을 공부하려던 차에 이 강의를 발견하곤 바로 입문하게 됐다고. 4구 점수는 300점이란다.
이어 그는 “당구는 참 재미있어요. 저는 수학을 참 좋아하는데 그 원리와 매우 유사해요. 입사각 반사각 엇각 빗각 등이 착착 맞아떨어져요. 계속 즐길 생각이에요.”라는 계획도 전했다.
유 씨의 뒤를 이어 대회 참가 여성들 속 청일점인 최철성(73) 씨가 인터뷰 테이블에 앉았다.
대학생 때 4구를 열심히 쳐 300점 수준이라는 최 씨는 “런던 출장 때 스누커를 접해봤는데, 최근 정년퇴임 후 스누커와 유사한 포켓볼 강좌가 있다고 해 곧바로 등록했다”고 했다.
이어 “예전에 당구는 레저의 반열에도 진입이 어려운 스포츠였으나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또 공간의 제약이 거의 없고, 비용도 적게 드는 운동이 바로 당구”라고 엄지를 세웠다.
이날 대회는 점심시간을 넘겨 오후 4시까지 펼쳐졌다. 처음엔 “이야~ 잘쳤다” “나이스 샷” 등 갤러리 사이에서 환호가 터져나오더니, 결승전이 시작되자 장내가 고요해졌다.
치열한 접전 끝에 A반 우승은 오은영씨, B반 우승은 이순정씨가 차지했다. 입상자는 △A반 1위 오은영씨부터 2위 조계옥씨 공동3위 박미정·최인숙씨 △B반은 1위 이순정씨부터 2위 이연재씨 공동3위 김영순·이송미씨다.
이들을 지켜보는 구승미 강사의 눈엔 제자들을 자랑스러워 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트로피와 상장, 꽃다발을 든 이들의 얼굴엔 함박웃음이 가득했다. “내년에도 그 후에도 쭉 당구 칠 겁니다.” 수강생들의 공통 의견이었다. 이렇게 ‘미리 크리스마스’로 치러진 여성들의 포켓볼대회를 막을 내렸다.
[이상연 기자/큐스포츠뉴스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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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에잇볼 포켓볼대회 왕중왕전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