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통(당구계)에 오래 있길 잘했다 싶어요.”
한국당구계 ‘큰형님들의 큰형님’, 박병문(83) 원로당구인이 지난달 초 ‘제1회 구미시장배 전국동호인 당구대회’(구미 동호인대회) 현장에 선수로 떴다. 출전소감은 “감격스럽다”였다.
박 원로는 1960-70년대에 ’쌍리‘ 이상천-정상철과 당대 최강자로 군림하던 인물이다. 숱한 전국대회 트로피를 수집한 그는 태극마크를 달고 당시 세계 정상권이던 일본과의 당구 한일전 선수로, 주최자(1989~2006년)로서 나서며 한국 캐롬당구의 잉태→발전을 힘껏 이끌어왔다. 이후 국가대표 감독(2005)도 역임했다.
84년엔 한국인 최초의 프로당구 선수 타이틀을 따냈다. BWA 아시아지역 선수선발전 3위를 차지, 본선 시드를 받은 최초의 한국인으로 1985년 BWA의 벨기에 스파오픈 16강에 오른다. 이에 단 16명에게만 허락되는 네덜란드 이벤트대회에 초청되기도 했다.
경기장 밖에선 양귀문 등 동료 레전드들과 전국을 돌며 예술구로 당구 전파에도 힘썼다. ’예술구 달인‘ 남도열 시니어건강당구협회 회장이 그의 후배다.
90년대 후반부턴 10년 가까이 당구 해설로도 이름을 날렸다. 그의 직계 제자인 임윤수 고양당구연맹 회장은 현 SBS스포츠 당구해설위원로서 스승의 바통을 잇고 있다. 임 회장이 고등학교 3학년 때 박 원로를 찾아와 사제의 연을 쌓았다고.
그래서 오늘날 박 원로는 ’한국당구계 레전드‘로 칭송받고 있다. 위 약력을 인터뷰 테이블에서 짚어나가자 그는 “한국당구를 만드는 데 서까래 하나 정도는 얹었다고 생각해요”라며 껄껄 웃는다.
이런 그가 큐를 빼들고 경북 소재 초대형 컨벤션센터 구미코에 왔다. 당구대 40대가 들어차고도 공간이 남는 특설경기장(구미코 전시장)을 접한 그는 ’즐거운 격세지감‘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고 했다.
“한국당구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피눈물 납니다. 선수신분을 숨기는 경우가 허다했죠, 온갖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에 저항하며 발전해왔습니다. 그 결과 프로당구 PBA가 출범했고, 이번엔 초대형 전시장에서 동호인대회가 열리네요. 허허. 후배들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기쁨으로 가득찬 그의 뇌리속 한 켠에는 아쉬움도 존재했다. 대한당구원로회(시니어연맹 전신 격) 시절이 그립다”는 그는 또래 당구인들이 속한 대한당구연맹 시니어연맹이 더 단합해 나아가길 기원했다.
이어 수많은 당구계 후배들에겐 간곡한 마음을 담아 당부를 남겼다. “내가 한국 당구계 전체를 대표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항상 언행을 조심해 당구인으로서의 명예를 지켜주시라”는 것.
당부를 끝으로 박 원로눈 인터뷰 자리에서 일어났다. 큐를 챙기더니 “경기(구미 동호인대회 시니어123캐롬 2차전)가 있다”며 씨익 웃었다. (그는 해당 경기에 이어진 4차전서 패배, 대회를 마감했다)
“요즘에도 당구를 쳐요. 집 근처 일산 화정 ’약속당구장‘(그의 후배가 그가 운영하던 당구장 이름을 따 개설, 현재 주인은 다른이)에 주 6일을 출근합니다. 아직도 당구가 내 가슴을 뛰게 하네요.”
[구미=이상연 기자/큐스포츠뉴스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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