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편에 이어] 아일랜드 일정 첫 3일이 지나, 아이리쉬오픈이 끝났다. 오프닝과 같던 이 대회가 끝나자 2025 World Matchplay Championship(월드매치 챔피언십)의 일정이 시작됐다.
할아버지 연령대 선수들이 집에 가고, 그 자리를 더 높은 레벨의 인도 선수들과 영국선수 등이 메웠다. 그들은 상위 랭커들이었고, 그보다 더 높은 최상위 랭커들도 오는 것을 보니, 월드매치 챔피언십은 최고단계인 ‘레벨6’ 대회가 확실해보였다.
한 해에에 두 번 있는 레벨6단계 대회였다. 아일랜드에서 열리는 4월 대회가 이번 대회였고, 10월에는 잉글랜드에서 개최 예정돼 있다.
월드매치 챔피언십은 IBSF(국제스누커당구연맹) 대회들 대비 참가 선수들의 자세가 조금 달라 보였다. IBSF 대회들은 세계당구선수권대회 등이다. 우리나나라에서도 감독과 선수가 파견된다. 이런 국가대항전을 거르고, 월드매치 챔피언십에만 참가하는 선수들이 적지 않았다.
IBSF 대회와 월드매치 챔피언십 간 대비되는 점은 또 있었다. 바로 대회 분위기였다. 전자는 비장감이 진하게 느껴진다면, 후자는 즐기는 쪽에 더 가까웠다.
이번 월드매치 챔피언십만 보더라도, 경기하다가 이야기하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심지어 내가 심판을 본 대회 준결승전에서는 15분간의 쉬는 시간에 친절한 피터 아저씨가 나에게 오더니 “jenny 뭐 마실래? 내가살게”라고 해 깜짝 놀랐다. ‘이거 경기가 맞나?’ 싶었다.
혹자들은 ‘심판에게 잘 보이려 마실 거 사주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현장의 선수들은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대회를 즐기는 데 진심인 사람들이었다.

예를 또 들어본다. 한 선수는 멀리 있는 공이 포켓되자 “심판 오지마. 내가 꺼낼게”라고 하고, 공을 꺼내어 주면 “땡큐”라며 미소를 보여준다.
심판이 당연히 해야 할 일 일들인데, 그것을 해주는 심판들이 그들에겐 ‘우리를 도와주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즉, 그들에게 심판은 지적하고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이를 통해 심판의 위상이 바닥을 치는 한국의 실정과는 매우 다르다는 점을 알게 됐다.
심판이 거슬려서, 심판이 콜을 잘못해서, 심판으로 인해, 다른 테이블로 인해, 구경하는 사람들이 떠들어서 등의 핑계는 없었다. 배워야할 매너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여자 심판이라 귀해서 더 잘해준다”고도 하더라. 이유야 어쨌든, 월드매치 챔피언십 동안 솔직히 몸은 너무나도 히들었지만, 선수들을 보면 피로가 싹 풀렸다.
월드매치 챔피언십 예선은 9개의 A부터 J그룹으로 나뉘어 리그로 경기를 치른다. 총 5경기다. 한 세션 당 100점 경기다 보니 진행속도가 빠르지는 않다. 대신 선수들은 신중함의 끝을 보여준다.
내 얘기를 하자면, 첫 경기부터 또 방송경기였다. 앞선 아이리쉬 오픈에서 한번 해봤다고 떨리진 않는데, 배정받은 테이블의 두 선수 모두 (경기속도가)느린 이들이다.
2시간 30분을 꼬박 쉬지않고 쳤는데 겨우 3세션만 지나갔다. 다리가 아파 후들거렸다. 그러나 방송이니 꾹 참았다. 헌데 3세션 끝난 후 느닷없이 공을 그만 치더라. 다음경기에 배정된 선수들 때문이었다. 경기를 마치지 않은 선수들은 이날의 모든 경기가 끝나고 밤에 나머지 2세션을 더한다고 했다. 색다른 방식이었고, 개인적으로 대단히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이런 재미있는 상황 뒤 나는 곧바로 배정받은 다음테이블로 향해 심판 임무를 수행했다.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었다. 꼬박 5시간을 테이블에서 선수들과 함께 해야 했다. 짐작컨대 2만보 이상 테이블주위를 돌았을 것이다.
그 과정들을 소화하고 나자 온 몸에 힘이 쫙 빠졌다. 구토가 나올 정도로 힘든 과정이었다.
경기를 함께 마친 한 선수가 “jenny 커피마실래?”라고 물어봐 주며, 나를 토닥여줬다. 눈물이 찔끔 나올 뻔 했다. 친절한 피터 아저씨도 준결승 경기 중 쉬는시간에 “커피 사다줄까?”라고 물어봐준 바 있다.
이처럼 친절한 이들은 세계랭킹 1,2위의 톱랭커들이다.
이어 토너먼트다. 여기부터는 11세션으로 진행된다. 선수뿐만 아니라 심판 또한 체력싸움이 시작된다. 나는 한 경기에서 총 10세션을 소화했다. 아일랜드에 동행한 우리 박은주 심판은 11세션을 모두 채웠다고 한다.

준결승은 인내력의 한계다. 13세션이다. 기본 4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장기전이란 말이다. 중간에 7세션하면 15분을 쉰다. 나는 준결승서 부심을 보았는데 우리팀 테이블은 12세션까지 했다. .
결승은 더하다. 총 15 세션을 한다. 5시간 소요는 기본(우리 한국 심판들은 국내에서 이런 경기를 심판 본 적이 없다).
이날 결승전은 15세션을 모두 채웠다. 앞서나가던 Pankaj Advani를 David Causier가 7대 8로 승리, 우승의 영광을 차지했다. 그 개인적으로는 아이리쉬오픈에 이어 2관왕에 올랐다.
이렇게 월드매치 챔피언십의 모든 일정이 종료됐다. 곧이어 주최측이 우리 심판들에게 공식 참여증서, 내 이름과 대회명이 새겨진 볼 마커 등의 선물을 줬다. 세상에 하나뿐인 것들이다. 심지어 증서를 받는 장면은 방송으로도 송출됐다.

그것으로 지난 8일간(모든 대회일정)의 피로가 싹 풀렸다. 아울러, 지난 2년동안 이것을 받기위해 수많은 일들을 겪으며 공부해온 모든 것들이 뇌리에 스쳐지나갔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이렇게 정성을 기울여 본 것이 대체 얼마만인가. 뿌듯하면서 스스로가 대견헸다.
이런 즐거움을 음미하던 무렵 들려오는 소식. “9월 싱가폴오픈에 와주겠니?” “10월 잉글랜드 오픈에 와주겠니?” 참 반가운 말이었다. 우리들을 인정해준다는 뜻 아니겠나.
좋은 기분으로 호텔방에 들어오니 메신저가 ‘띵동’ 울린다. ‘In 2026 there will be a bigger Billards event in Austria, I’ll invite you.‘(2026년에 오스트리아에서 더 큰 규모의 당구 대회가 열릴 예정인데,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오스트리아 디렉터에게 온 메시지였다. 음악과 예술의 도시 비엔나(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으로도 불린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다. 나는 정말 행복한 래프리다.
이를 끝으로 참가기 2편을 마친다. 다음 마지막 편에서는 아이리쉬오픈과 월드매치 파티, 선수들과의 저녁 타임에 얽힌 이야기를 전한다.

[글·사진=최유경 대한당구연맹 이사·심판/Dream Stream CEO]
▲필자 약력
△대한당구연맹 이사
△Violinist
△Dream Stream CEO
△(주)루카테크놀로지 감사
△전)배재대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