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여성 첫 국외 잉빌대회 투입, 최유경의 좌충우돌 심판기]③ 전공살려 바이올린 연주, 현장서 ‘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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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으로는 최초로 잉글리시빌리어드 국제대회에 심판으로 파견된 최유경 대한당구연맹 이사의 기행문. 경기장 밖에서의 에피소드로 시리즈의 마침표를 찍는다. 사진은 대회 오프닝 행사에서 전공을 살려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최유경 심판.

 

 

[2편에 이어] 앞서 ‘아이리쉬오픈’과 ‘월드매치 챔피언십’ 투입 심판으로서 이야기를 풀었다. 이번 편의 이야기들은 경기장 밖에서의 일들이다. 한 장면을 미리보기로 들려준다면, 나는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우리 심판진은 아일랜드 민요를 개사해 노래를 불러 대단한 환호를 이끌어냈다.

 

십수년만에 잡은 우측핸들’, “몸이 기억”

아이리쉬 기네스’ 맥주에 매료

 

(심판업무 종료 후) 우리 한국인 심판 4인(이길남 최유경 박은주 양경현)은 20시간을 날아 더블린공항에 입성했고, 이후 렌터가를 몰고 더블린으로 들어갔다. 운전은 내가 했다. (한국과 달리 운전대가)오른쪽 좌석에 있어 쉽지는 않지만, 십수년 전 영국에 살아봤다고 몸이 그 경험을 기억한다.

더블린을 3시간 구경 후 칼로우로 80키로를 달려서 호텔에 들어왔다. 시차가 어긋나버렸다. 우리 인생 모두 새벽 3시에 눈이 떠져 곤욕이었다. 그 상황이 무려 3일이나 지속됐다. 그 여파는 귀국하고서도 잠깐 이어졌을 정도다.

 

번래티 캐슬 & 포크 파크에 방문, 기념촬영한 최유경 심판. 한국으로 치면 용인민속촌 쯤에 해당하는 유명 관광지라고 한다.

 

이렇게 새벽공기를 마시게 된 우리 일생은 그 참에 아예 지역에서 유명하다는 번래티캐슬(Bunratty Castle)과 모허 클리프(Cliffs of Moher)를 구경하기로 했다.

운전대는 양 심판님이 이어받았는데, 능숙하게 오른쪽 핸들 운전을 하시는 모습이 참 믿음직스러웠다. 여담으로, 아일랜드의 물가는 가히 살인적이다. 렌터카부터 기름 값까지 대체로 한국보다 훨씬 비싸다.

 

여정을 위한 렌터카 등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카드 ATM기에 선 우리 심판진들.

 

골웨이를 돌아 호텔로 오는 길에 100년 넘은 유명한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었고, 그 과정에서의 운전대는 내가 잡았다.

그렇게 호텔로 오니 선수들이 하나둘씩 들어왔고, 곧 호텔 바가 선수들로 꽉 찬다. 서로 인사하고 포옹하고 축제의 시작이다. 즐거운 분위기를 맥주 ‘기네스’가 더욱 부추겨 흥을 돋운다. “아일랜드에 오면 기네스를 마셔라”는 말이 왜 생겼는지 아주 잘 알게 됐다.

 

‘아이리쉬 기네스’ 맥주를 즐기고 있는 한국 심판들.

 

필자는 술을 먹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입 머금은 ‘아이리쉬 기네스’는 매일 밤마다 필자를 기네스와의 사랑에 빠지게 했다. “기네스는 이 모든 힘듦을 한방에 풀어지게 하는 만병통치약”이라고 영어로 농담을 건네는 나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이는 그간의 심판수행 업무가 힘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바이올린 연주, 심판의 노래

선수들 음악 들려줬으니 식사 대접

 

시간을 며칠뒤로 돌려 ‘아이리쉬 오픈’ 마지막날 저녁. 숙소 호텔 1층 홀에서 대회의 Closing party와 더불어 월드 챔피언십 Opening ceremony가 있었다.

대회 개최지인 아일랜드의 댄스도 추고 기타로 노래도 부른다. 그 뒤 내차례에는 한국에서 가지고간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필자의 직업(현직 바이올리니스트, 전공자)이 그것인지라 힘든 점은 없었다.

탱고와 베토벤 2곡을 연주 후 마지막곡으로 한국심판 3분이 개사를 해서 나의 연주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

원곡은 아일랜드 민요인 Danny Boy, 여기에 한국에서 미리 만들어간 MR(반주음악)에 바이올린 소리를 덧입히고 우리심판 3명의 노래가 올라가니 정말 아름다운 장면이 연출됐다. 흡사, 외국인이 한국에 와 우리 국민들에게 아리랑을 불러주는 그런 모습으로 비춰졌으리라.

 

대회 오프닝 세리머니 행사에서 바이올린을 연주중인 최유경(좌) 심판. 우측은 현지 학생들의 기념공연.

 

공연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환호와 박수가 쏟아진다.

“jenny(최유경 이사의 영어 이름).” 다음날 월드챔피언십 시작하러 경기장에 가서 선수를 기다리는데, 들어오는 대다수의 선수들이 나를 불러 세운다. “(전날 오프닝 세리머니를 통해)태어나 처음 바이올린 현장연주를 들어 너무나도 기쁘다” 등의 온갖 찬사를 들려줬다.

이 대목에서 감동받은 포인트. 예술을 귀하게 여기는 그들의 정서였다. 저 멀리 테이블에서조차 나와 눈을 마주친 선수들은 연신 엄지척 한다. 예술의 힘이란 이처럼 대단한 것일까. 새삼 느낀다. 그 덕분에 5시간의 심판 임무가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경기일정이 끝나니 선수들이 “어제 우리에게 좋은 소리를 들려줬으니 런치(점심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한다. “음악은 공짜로 듣는 게 아니”란다. 감사할 따름이었다.

 

이길남 위원장·심판 2명에 감사

주최측이 “10월 잉글랜드로초청

 

현장 체류 7일째, 한국에서 우리선수 2명(백민후 이근재)과 감독(황철호)이 아일랜드로 왔다. IBSF(세계스누커당구연맹) 주최 ‘세계잉글리시빌리어드 선수권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다. 타국에서 우리 선수단을 보니 무척 반가웠고, 그들이 참 자랑스러웠다.

또한 한국선수단 3인은 나를 포함한 우리 여자심판 2인의 현재를 만들기까지 힘껏 도와준 이들이다.

이곳 아일랜드로 오기 전 나는 여러 풍파를 맞아 힘들었다. 그 와중에도 출국 1년 전부터 영어 학원을 다니고 체류비를 모으며 아일랜드행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그 결실이 이처럼 좋은 추억들로 맺게 돼 기쁘다. 나아가 주최측으로부터 5월 벨기에, 10월 잉글랜드 대회 심판으로 초청됐다. 숙박비 등의 체류비가 이번 일정에서처럼 지원될 예정이다.

글로벌해져야 하는 우리 당구계의 한 사람으로서 반가운 소식이었다. 이와 관련해 글로벌로 진출하려는 대한당구연맹 새로운 수장, 서수길 회장님의 포부에 기대감 또한 전한다.

 

주최측 관계자 등과 기념촬영 중인 한국 심판들.

 

이어 이번 아일랜드 여정을 시작 단계부터 함께 손잡고 끝까지 한 우리 심판진께 감사를 전한다. 앞서 이 어려운 길을 닦아놓으신 이길남 당구연맹 심판위원장님이 큰 힘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공부하라고 원서를 같이 읽고 가르쳐주신 나의 스승님이시다.

나와 기꺼이 “함께 하겠다”며 적금을 들었던 박은주 심판, 텅 빈 상태에서 시작해야 해 힘들어 어려움을 겪었던 양경헌 심판님까지. 그들에게 “잉빌 종주국에서 심판을 보게 돼 자랑스럽고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주최측의 말이 지금도 떠오른다. “Jenny가 오면 England의 가을이 아름다울거야, 우리 10월에 만나.”

나는 이 한마디에 다시 로맨틱한 그들과의 가을을 꿈꾼다. <끝>

 

최유경 대한당구연맹 이사·심판

 

[·사진=최유경 대한당구연맹 이사·심판/Dream Stream CEO]

 

▲필자 약력

△대한당구연맹 이사

△Violinist

△Dream Stream CEO

△(주)루카테크놀로지 감사

△전)배재대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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