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화한 ‘캄보디아 맘’ 한은세, “다문화가정 아들·딸 위해 죽기살기 당구”… 교통사고 딛고 ‘트라이아웃 1위’ 기적

올해로 한국살이 8년 차인 ‘캄보디아 출신 엄마 선수’ 한은세(28)가 지난 19일 2025-26시즌 프로당구 LPBA 트라이아웃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펼쳐보이며 전체 1위로 통과, 프로당구선수로서의 두 번째 시즌을 맞아히게 됐다. 사진은 한은세와 가족들. 왼쪽부터 남편 조용민씨, 딸 서현, 아들 성현, 한은세. 사진=한은세-조용민 부부.

 

 

“큐 든지 올해로 4년 째인데, 그간 죽기살기로 공 쳤어요. 자랑스러운 당구선수 엄마가 돼서, 다문화가정의 자녀인 우리 아들·딸이 가슴 쫙 펼치고 살 수 있게.”

가슴 깊게 절절한 모정의 감정이 느껴지는 이 말. 지난 19일 진행된 2025-26시즌 프로당구 LPBA 트라이아웃 1위 선수의 소감이다. 주인공은 올해로 한국살이 8년 차인 ‘캄보디아 출신 엄마 선수’ 한은세(28)다.

현재 아내·엄마·선수, 1인 3역중인 한은세가 4년 전 품었던 ‘당구 코리안 드림’을 위한 꽃이 막 봉오리를 틔우려 한다.

“밥 안 먹어도 배가 부르네요.” 극도로 긴장한 탓에 아주 소량의 죽으로 끼니를 겨우 떼우고, 치열하면서도 길었던 하루의 ‘생존경쟁’을 막 난 상태였지만, 한은세는 “허기짐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기분 좋다”며 웃음소리를 들려줬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날의 성취는 한은세에게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경기중인 한은세. 사진=PBA

 

웃음 뒤에 쌓여 있던 숨 가삐 달려온 삶, 그 속에서 말 그대로 ‘인생 2막’을 써나가고 있는 한은세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봤다. 인터뷰는 트라이아웃 당일 밤, 전화로 진행됐다.

한은세는 인터뷰 가운데, 한자어와 관용적인 표현 등을 수시로 활용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만큼 그의 한국어 실력은 매우 유창한 수준이었다. 지난 2021년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한국어로 치러, 97점의 우수한 성적표로 패스했다고도 덧붙였다.

 

직전 시즌 LPBA 데뷔… 단 2승, 1승은 기권승

트라이아웃 강등, 사실상 방출… 교통사고까지 

 

한은세는 직전 2024-25시즌에 우선등록선수 자격을 부여받고 프로당구선수 커리어의 시작종을 울렸다. 시작은 호기로웠다. 하지만 현실은 혹독했다. 한 시즌 동안 거둔 승리는 단 2승. 그중 1승은 기권승이었다. (시즌 마지막 투어에서야 PPQ에서 승리하며 진정한 첫 승리를 따냈다)

결국 160명 중 ‘랭킹 공동124위’라는 사실상 ‘꼴지’ 성적표를 받게 된 한은세. 트라이아웃 강등, 통과하지 못하면 그대로 프로자격 상실이었다.

위기에 직면한 그에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큰 사고가 들이닥쳤다. 트라이아웃을 대비하던 3주 전, 시속 100km로 달리던 차량에 들이받혀 자동차는 폐차되고 그녀는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천만다행으로 중부상은 겨우 면했으나, 통원치료가 불가피한 상태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가족을 위해, 하루 12시간 연습에 몰두

2016년 남편과 혼인, 2021년 귀화 “어엿한 한국인”

트라이아웃 1-2차전 애버 1.176… 전체 1위로 ‘생존’

 

하지만 대형 사고조차도 그의 의지를 꺾진 못했다. 자신을 위해 헌신해주는 27살 많은 남편(조용민씨)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8살 아들(성현), 6살 딸(서현) 때문에라도 움켜쥔 ‘선수의 큐’를 절대 놓을 수는 없었다.

지난 2016년 10월 5일, 한은세는 고국인 캄보디아에서 남편과 처음 만났다. 첫눈에 서로를 마음에 품게 된 남녀는 단 한달만에 혼인신고를 마쳤다. 이듬해 2월 23일, 한국 땅을 밟은 한은세는 2018년 아들, 2020년 딸을 출산하며 어엿한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

지난 2021년에는 그 어렵다는 귀화시험을 통과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그 이유 또한 오직 ‘남편’과 ‘아이들’, 즉 가족이었다.

그 각오를 그대로 가져와, 단호한 트라이아웃 통과 결의를 다졌다. 병원에서 퇴원 후 2주 동안은 하루 평균 10~12시간을 당구장에서 연습에 몰두했다.

 

연습 중 잠시 쉬며 셀카에 자신과 훈련장을 담은 한은세. 사진=한은세-조용민 부부.

 

6살 딸을 데리고 다니며 함께 연습시간을 보내야 했고, 8살 아들까지 챙겨야 했다. 그야말로 엄마이자 선수로서 온전히 하루를 불살랐다. 연습 막바지에는 테이블을 두고 하도 오래 서 있던 탓인지 다리가 심하게 퉁퉁 부을 정도였다.

동시에 극한의 상황으로 스스로 몰아넣었다. 거주지인 세종시와 대전·청주 등 복수의 지역으로 당구원정을 다니며 낯선 환경, 익숙지 않은 테이블, 다양한 유형의 상대를 대하는 적응력을 키웠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19일. 제대로 그간의 노력을 보상받게 된다. 트라이아웃 무대에서 우선 1차전과 2차전을 애버리지 1.176의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이겼다(각각 20:6, 20:7). 그 직후 교통사고 후유증과 더불어, 긴장감으로 인한 복통·설사까지 몰아닥쳤으나 3차전까지 투혼을 발휘해 승리(11:8), 전체 1위로 다음 시즌 출전권을 거머쥐었다.

 

남편의 헌신적 외조, “난 로또맞은 아내

캄보디아 스타스롱과 조우, “나도 당구로

‘우여곡절 끝 입성’ 다음시즌, “목표는 32강진출”

 

잔뜩 신이 나서 소감을 전하던 한은세가 남편 조용민씨를 다시 언급했다. 집중적인 연습이 필요할 때마다 집안일과 육아를 도맡아 해준 남편 덕에 ‘행복감 부자’가 된 한은세는 “나는 로또맞은 아내”라며 웃는다.

 

한은세 가족이 함께 캠핑중이다. 맨 우측의 조용민씨는 아내인 하는세에게 ‘로또’와도 같은 존재였다. 사진=한은세-조용민 부부.

 

남편 덕분에 알게 돼, 지금은 ‘언니-동생’ 사이가 된 고국 스타가 있다. 바로 캄보디아 국적의 당구스타, 스롱피아비다. 고향이 그릴 수 밖에 없는 결혼이주여성인 아내를 위해 남편이 캄보디아와 관련한 한국 내 정보를 수집하던 과정에서 스롱의 존재를 알게된 것이다.

“나도 혹시 당구선수로?” 이 생각은 곧 한은세의 머릿속을 꽉 채웠다. 내친김에 곧바로 ‘고국 언니’을 찾아 청주(당시 스롱의 거주지)로 갔다. 그 자리에서 여러 조언을 들게 된 한은세는 ‘제2의 피아비’를 꿈꾸며, ‘당구 코리안드림’를 이루리라 굳게 마음먹는다.

여담으로, 고국이 같다는 점 외에도 한은세-스롱 간에는 더 진한 연결고리가 있었다. 한은세의 아버지 거주지가 스롱 고향(캄보디아 캄퐁참)과 같고, 서로의 집도 지척에 놓였다고.

 

한은세(좌)는 우연히 알게된 ‘고국 언니’ 스롱피아비의 조언을 듣고 당구선수의 꿈을 품게 됐다. 스롱과 함께 손을 붙잡고 있는 한은세. 사진=한은세-조용민 부부.

 

프로행을 결심한 이후, 한은세는 이정희 선수(청주)를 스승으로 만나 하얀 백지장처럼 텅 비었던 자신의 당구인생사를 조금씩, 그러나 열심히 채워나갔다.

그리고 그녀는 몇 해 뒤인 2024-25시즌에 마침내 LPBA 우선등록 선수 자격을 얻으며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환하게 웃을 수 있었고, 곧 다가올 자신의 두 번째 시즌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한은세-조용민 부부.

 

이처럼, 이제 다시 시작선에 선 한은세. 그의 우선목표는 다음 2025-26시즌 32강 진출. 그것을 위해 정진하면서, 언젠가는 자신이 가족들에게 큰 자랑거리가 되길 바란다.

“꼭 우승하고 싶어요. 우리 남편, 다문화가정 자녀인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요.”

 

[이상연 기자/큐스포츠뉴스 취재부장]

기사제보=sunbisa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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