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즌 6차 [NH농협카드 PBA 챔피언십]
- 우승자 최원준 “밑바닥부터 다지고 올라와 우승”
- “엄상필 선수 조언으로 ‘터닝포인트’ 맞아”
- 4강서 최성원 상대 후 “엄청난 선수, 제대로 체감”
“정말 긴 슬럼프를 겪었습니다”
지난 15일 밤 최원준은 23/24시즌 6차 ‘NH농협카드 PBA챔피언십’ 결승서 튀르키예 강호 비롤 위마즈(웰뱅피닉스)를 꺾고 2번째 PBA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무려 4년2개월이나 그를 쫓아다니던 ‘반짝 우승’이란 평가도 쏙 들어가게 했다.
우승직후 고양 킨텍스 프레스실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는 그간 최원준이 걸어온 인고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아울러, 4강 상대였던 최성원(휴온스)에 대한 경외심과, 아내와 딸 등 가족에 대한 애정까지 느껴졌다. 다음은 기자회견 전문.
Q. 경기 및 우승 소감은.
= PBA 초창기때는 자신감이 있었고, 당구도 많이 쳤었다. 그러나 우승을 하고 나서부터 그 자리를 지키기가 어렵다는 말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정말 긴 슬럼프를 겪었다. 스트로크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안됐다. 처음엔 안되는 이유에 대해 변명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 현실적인 부분을 직시했다. 고민하고 연습했다.
사실 블루원엔젤스의 엄상필 선수가 같은 팀 리더였는데, 그의 조언 덕분에 저의 선수 생활에 터닝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제가 갖지 못하고 있던 것들을 보완해줬고,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우승해서 너무 기쁘고, 이 날이 다시 올 줄 몰랐다. PBA에는 너무 쟁쟁한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다시 우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다. 열심히만 치자라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왔다. 컨디션보다는 멘탈을 잡았던 것이 우승 요인이라 본다.
Q. ‘반짝 우승’ 이라는 말이 힘들었다고 했는데, 자극이 됐나.
= 그때 당시(PBA 출범 시즌)에는 다비드 마르티네스 선수가 누군지도 몰랐다. 선수들 이름도 몰랐고, 어떤 기량을 가졌는지도 몰랐다. 당시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쳤다. 우승 후에 시즌이 지나오면서 어떤 선수인지 알게 됐다. 이후에 새로운 큐를 쓰게 됐는데 슬럼프에 빠졌다. 그때는 큐가 그렇게 중요한 지 몰랐다. 당연히 ‘반짝우승’이라 생각했을 만하다. 그 사이 밑바닥부터 4년동안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올라왔고, 지금은 조금 탄탄하다고 생각한다. 한때 멘탈 교수님과도 상담을 했었는데, “우승했을 때가 가장 위험하다”고 했다. 그 이후로 바닥으로 내려가는 선수들이 너무 많다고 하셨다. 서서히 경험을 쌓고 우승을 하는 것이 다음 시합이나 앞으로의 선수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하셨다.
Q. 블루원엔젤스 방출 이후에도 엄상필 프로에게 도움을 받았나.
= 맞다. 팀리그 소속이었을 때도, 방출 이후에도 개인투어 때 만나서 상담을 많이 했다. 최근도 마찬가지다. 제 당구인생에서 신선한 충격을 많이 받았다. (어떤 점이 가장 충격적이었나) “공을 무서워하지 말고 끝까지 공을 봐라. 대충 치고 하늘에 맡기지 말라”는 말이 가장 가슴에 와 닿았다. 공을 칠 때는 정확하게 어떤 경로로 칠 것인지 설계를 해야하는데, “대충 이쯤이면 맞겠지” 하고 운에 맡기지 말라는 뜻이다. 대부분 선수들이 세트경기를 하다 보면 정신적인 데미지가 큰데, 자다 일어난 듯한 멍함을 느끼기도 한다. 내 머리와 팔이 따로 놀 때가 있는데, 그렇더라도 공을 무서워하지 말고 끝까지 샷을 하라는 얘기다.
Q. 연승 가도를 달리던 최성원의 기세를 꺾었는데. 4강전이 이번 우승의 분수령이었다.
= 역대급 경기였다. 이전까지 (최)성원이 형을 직접 경기로 겪어보진 못했다. 주위에서 많은 얘기를 듣기만 했었다. 직접 만나 보니 서서히 늪에 빠지는 느낌이더라. 2세트까지만 해도 치고 나갈 때라 몰랐는데, 3세트부터 서서히 어려웠다. 경기 운영을 안 하는 것 같은데, 하고 있고. 그런 모습들이 너무 자연스럽다. 그 모습을 보고 정말 커리어가 엄청난 선수라는 것을 체감했다. 같은 선수로서 그런 깊이를 봤을 때 “정말 힘든 상대구나”, “이래서 강한 선수들도 (최)성원이 형을 힘들어 하는구나”를 느꼈다. 사실 4강전 6세트 9:14가 됐을 때는 다소 내려놨었다. 기회가 온다면 한 큐에 끝내자는 생각을 했는데, 그게 현실이 된 순간 제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Q. 준결승 끝나고 쉬는 시간이 길지 않았는데.
= 몸이 방전됐다. 밥을 먹지 못할 정도였다. 빵과 이온음료를 먹고, 정신을 차리려 냉수 샤워를 했다. 자다 일어난 듯한 멍함 때문이었다. 그만큼 최성원 선수가 나를 괴롭혔다. 하하. 한번 더 하라면 못할 것 같다. 만약 숙소에 계속 있으면 퍼질 것 같아, 곧바로 나왔다. 외부에 있으면서 정신을 차렸다.
Q. 우승 소감에서 아버지를 언급했는데.
= 작년에 담도암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께 꼭 우승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당시에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시기였다. 너무 아쉽다.
Q. 4년만에 슬럼프를 극복을 했는데, 장기간이었다. 고비가 많았을텐데.
= 그럴 때마다 대회 때마다 동고동락하는 이상대, 김임권 선수에게 “나는 큐스쿨은 안 갔어” 하고 자랑하면서 위안했다. 그간 너무 힘들었다. (엄)상필이 형이 알려준 큐질이나 연습 루틴을 1년4개월 동안 갈고 닦았다. 사실 완성하진 못했지만 몸에 익숙해진 부분은 있다. 오늘 결승때도 지고 있을 때 (엄)상필이 형이 해준 말을 상기하면서 쳤다. 지금은 옛날과 지금의 모습이 반반정도가 된 것 같다.
Q. 딸들이 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른다고.
= 큰 딸(서연 양)은 10살, 작은 딸(민아 양)은 7살이다. 큰 아이는 당구 선수라는 걸 아는데, 둘째는 “아빠 당구 쳐” 이렇게만 말해 준다. 제가 그간 성적을 내지 못했기 때문에, “아빠가 당구를 치면 이길수도 있고 질 수도 있어. 항상 이기면서 살수는 없는 거야” 하고 이야기해준다. 오늘도 최성원 선수와 치기 전에 떨렸다. 애들에게 미리 “최성원 선수와 경기 하는데, 질 수도 있으니까 울면 안 돼”라고 했다. 그런데 큰 아이가 이기고 나서 울더라. “아빠가 이렇게 당구를 힘들게 치는구나 하고 감동받았다”고 하더라. 둘째는 마냥 지루해했다. 하하.
Q. 이번 시즌 스스로를 기량적으로 어떻게 평가하나.
= 해가 갈수록 성적이 탄탄해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스트로크이나 자세가 잡혀 간다는게 느껴졌다. 이번 투어에서 오히려 세미 사이그너 선수와 칠 때 마음이 편했다. 거물급의 선수와 경기하니까 오히려 마음 차분해지더라.
Q. 팀리그 방출 후 마음고생 심했을텐데, 또 이번 우승 계기로 좋은 소식 들릴 것 같은데.
= 팀리그 출범 이후 모든 선수들이 팀리그를 처음 경험하는 거였다. 지금이야 적응을 하고 안정되었지만. 당시 김갑선 선수와 혼합복식을 뛰었는데 그게 더욱 늪으로 빠지는 상황이 됐다. 지금은 팀리그 뛰게 된다면 지고 싶은 마음이 없다. 사실 여자 선수 전력이 강한 팀에 들어갔으면 좋겠다. 그때 고생을 너무 많이 했다. (김갑선 선수가 서운해 할 수도 있을텐데.) 얼마 전 (김)갑선 누나와 통화를 했다. 누나가 “나 데리고 어떻게 뛰었니 지금 애들 하는 거 보니 너는 정말 대단했다”고 말하더라. 하하. 팀리그는 불러만 주신다면 어디든 열심히 하겠다.
Q. 반짝 우승이라는 말을 깼는데, 앞으로 자신은
= 지금은 잃을 것도 많이 잃었고, 상처도 많이 받았고, 아물기도 다 아물었다. 체력만 조금 더 키우면 앞으로 잘 칠 수 있을 것 같다. 최성원 선수와 치면서 큰 도움이 됐다. 시합 전에 앉아서 이런 저런 얘기 많이 했다. 보통 경쟁 상대와는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데, 이번 교류로 최성원 선수가 정말 대인배라고 생각했다. 4강 1경기에서 위마즈 선수와 노병찬 선수의 경기를 함께 봤다. 위마즈 선수가 세트포인트, 노병찬 선수가 10점 차이가 났는데, 최성원 선수가 “저거 조금만 치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말을 하더라. 그때 “이 사람은 최고다”라고 생각했다. 경기 하면서 팬이 됐다. 4강 후에 얘기 나눌 때는 “형님 제가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라고 인사했다. 그랬더니 (최)성원이 형이“우승해라 파이팅 할 수 있어”라고 얘기해주셨다.
Q. 같은 처지의 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 PBA 1부 투어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은 정말 잘 치는 선수들이라 생각한다. 만일 유명한 선수와 경기할 때 상대를 크게 인식 하면 안될 것 같다. 저는 타 강호들은 다 이겨봤는데, (하비에르)팔라존 선수를 정말 이기지 못했다. 상대가 ‘강호’라는 인식을 버려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언제든 자신이 우승을 할 수 있다는 마인드를 갖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본다. 본인의 성적을 의심하는 순간 흐트러진다. 저도 “내가 최고다”, “당연히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정신적으로 많이 도움됐다. 1부 선수는 모두 우승 후보다.
Q. 첫 우승과 이번 우승 중 어떤 우승이 더 뜻 깊은지.
= 그 때는 PBA가 정말 쉬운 줄 알았다. 2차투어 끝난 후에 “할 만하다” 싶었고, 3차투어에서 우승했다. 그 이후에 내려섰다. 이후 사람들의 시선이나 평가들이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저는 성격이 단순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번 시합에서는 예선도 힘들었고, 사이그너 선수와의 경기 등을 복기해보면 제 자신이 조금 자랑스러울 만큼 잘 했다. 이번 우승이 더 뜻깊다.
Q. 딸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된 것 같은가.
= 큰 딸이 학교가면 “우리 아빠가 우승했다”고 친구들에게 알려준다고 하더라. 자랑스럽게 “우리 아빠 프로당구선수야”라고 얘기한다고 하더라.
Q. 상금은 어디에 쓸 예정인지.
= 코로나19로 많이 어려웠는데, 은행에서 빌린 대출금을 갚고, 저를 많이 도와 주셨던 분들께 식사 대접을 하고 싶다.
[이상연 기자/큐스포츠뉴스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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