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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희 대표 인터뷰2] “잘나가던 당구대 사업 접고 ‘공’ 택한 까닭은…”, “위기의 韓당구계, 모두 머리 맞대야”

 

 

[① 편에 이어] 

 

“슈퍼스타조차 생계에 허덕, 큐 놓고 사업으로”

“불황-호조 다 겪어본 당구대사업”

‘코스모스배 국제오픈 당구대회’를 7년 연속(90년 말~2000년 초) 개최하면서 기라성같은 국제 캐롬 스타플레이어들조차 경제적으로 좋은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안타까운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심사숙고 후 선수의 길을 접고 당구관련 수출입사업에 뛰어든다. 김종희 대표의 나이 32살 때 일이다.

 

1996년도 ‘코스모스배 국제오픈 당구대회’ 개최 당시 자료사진. 자료출처=연합뉴스tv ‘[성공다큐-정상에 서다] 43회: 지름6cm 당구공에 인생을 걸다…코스모스산업 김종희’ 편 영상서 발췌.

인터넷도 없던 시절 영어실력도 부족했던 32살 김종희는 3개월여동안 13개국서 당구계통의 해외 유명브랜드 업체 15개곳을 방문, 13개 업체로부터 국내 독점판매계약을 체결해낸다. 이 과정서 여러 유명업체 공장을 탐방하면서 국산 당구용품 제작에 대한 열망이 싹트게 된다. 그 도전은 당구대였다. 제품 무역을 하며 쌓은 안목을 십분 살린 덕분인지 그의 김종희표 당구대는 인기가 좋았다.

1997년엔 수원에 당구대 생산공장까지 설립한다. 그러나 예상못한 암초가 찾아왔다. 공장을 짓자마자 IMF 외환위기가 터졌고, 게임 ‘스타크래프트’ 붐을 타고 PC방이 늘면서 당구장 사업이 불황의 길로 빠진 것.

외환위기로 달러가격이 치솟자, 그가 수입해오던 물건 가격도 2~3개 치솟았다. 판매가 될리 만무했다. 그 탓에 독점판매권을 잃은 것도 몇 있다. 2년 간 이런 어려움 속에 허우적거렸다. 거의 전재산을 공장에 투자한 그였기에 빼도박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2003년, 당시 40살의 김종희에게 재기의 기회가 왔다.  바다이야기 황금성 등 사행성오락실이 단속 철퇴를 맞아 사장길로 가면서 당구장 붐이 다시 일어난 것이다. 전국 곳곳서 테이블 주문이 밀려들었다. 이미 설비를 갖추고 있던 당구장 공장이 불이 나도록 가동돼 한달에 1000대 정도를 팔아치웠다. 그것이 수년간 지속됐다.

 

“불황 영향 덜한 당구공으로 사업 선회”

“미완성 공 10만개” 등 인고의 시간 거쳐

‘아라미스 독주’ 글로벌시장 공략 성공 

그러나 이런 호조에도 그의 뇌리에는 ‘당구대 시장은 주기적으로 불황이 올 수 밖에 없다’는 경험에 의한 생각이 자리잡게 된다. 그래서 ‘불황 영향 덜 받는 아이템’을 모색한 끝에 찾은 게 당구공 사업이었다.

사업 아이템을 선회한 후 인고의 시간을 맞아야만 했다. 그 예로 김 대표는 “미완성 공만 10만개”에 달한다고 털어놓는다. 즉, 시판용 공이 나오기까지 최소 10만회의 수정작업이 있었다는 얘기다.

김 대표의 표현을 빌리면 “(제품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시간”들을 넘기고 넘긴 끝에 드디어 지난 2015년 다이아몬드 공이 세상이 나왔다. 이후 익히 알려진대로, 코스모스는 아라미스(벨기에)가 수십년 이상을 독식해온 글로벌 당구공 시장에서 적잖은 존재감을 과시하며 ‘토종 당구공’의 우수한 기술력을 알리고 있다.

 

인터뷰에서 자신의 자전적 내용들을 1시간 넘게 전해준 김종희 대표는 ‘한국당구계의 위기, 극복하려면’이란 주제를 인터뷰의 마지막 주제로 삼아 다시 이야기를 펼쳐나갔다. 비판의 논조가 아닌 우려의 논조였으며, 결론은 “(자신을 포함한)당구계 종사자 모두가 머리를 맞대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확고한 의지 또한 확고히 드러낸 43년차 당구인 김종희였다.

 

“중대클럽 소멸세… 한국당구계 위기”

당구장 요금 20년째 동결, 新수입원 발굴해야

이렇게 자신의 당구사를 나열한 김종희 대표는 한국 당구계를 위한 제언을 남겼다. “당구계 종사자들이 힘을 합쳐, 1000만이라는 국내 당구동호인의 산실이자 당구장 업주들의 주 수익처였던 중대, 즉 중대당구장을 살리자”는 것이다. 그 심정을 그의 말투를 최대한 살려 전달한다.

“두렵다. 나는 작금의 한국당구계가 100년사 중 가장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고 본다. 당구장은 물론, 우리 당구산업을 지탱해 온 중대 당구장이 소멸해 가고 있어서다. 이유를 축약하면 ’업주가 돈을 벌지 못해서‘다.

안타깝다. 요 몇 년간 한국 당구산업의 근간인 당구장이 매달 수백 곳이나 문을 닫고 있단다. 한때 3~4만 곳에 육박했던 당구장 수는 현재 1만 곳도 채 안 되는 실정이다. 3~5년 뒤 전국 당구장이 5000곳도 안 되는 광경을 볼까 봐 같아 우려된다.

그 우려는 당구장의 수익구조에서 기인한다. 당구장 수입원은 당구장 요금이 전부인데, 20년째 사실상 동결돼왔다. 오히려 거기서 더 떨어지기도 한다. 그 사이에 임대료 인건비 물품관리비 등은 매년 상승했다. 버는 돈(요금)은 그대론데 쓸 돈(각종 지출)은 치솟고 있는 실정이다.

당구장 업주들의 비명이 점점 커져 간다. 이런 현상 속에서 현재 개업하는 당구장 형태를 데이터 삼아 미래를 유추해보면, 수년 내로 대대전용구장이 절대다수인 시대를 맞을 수도 있다고 예측된다. 즉, 중대구장은 점차 사라져 갈 것이다.

‘중대구장’은 국내 당구장 산업계 전반에 걸쳐 허브 역할을 해왔다. “짜장면 내기 한판?” 등 한국만의 당구장 문화가 탄생해 자연스럽게 손님들을 클럽으로 유도해온 것이 바로 중대구장이다. 이를 토양삼아 오늘날의 ‘천만 당구인’ 보유 한국당구계까지 이르렀다고 본다.

그런 ‘중대구장’이 사라져간다. 영업상의 이유 등이 주요 원인이다. 이에, 우리 당구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요금만이 아닌 또다른 당구장 수입원을 발굴해야만 한다. 아니, 이미 발굴이 시작됐어야만 한다.

‘당구장 新 수입원 발굴’ 또는 ‘근본적인 수입원 발굴’ 작업에는 온 당구계가 의기투합해 전방위적으로 나서야만 한다. 당구연맹, PBA, 업계 종사자는 물론, 선수와 방송·언론 등 미디어까지. 나도 이에 포함된다.

한국당구는 현 전세계 캐롬의 중심국이다. 그러나 우리가 당구장업의 쇠락을 좌시한다면, 과거의 영광과는 거리가 멀어진 현재의 일본 캐롬당구계의 전철 밟을지도 모를 일이다.”

 

“저는 당구말고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죽어 저 세상 가도 당구 없으면 할 게 없을 것 같아요. 하하.”

 

이렇게 43년차 당구인의 소회가 마무리됐다. “후회되는 일은 없는가?”가 마지막 질문이었다. 이에 김종희 대표는 “내가 선택한 길이지만 선수로서 원없이 공을 쳐보기 못한 게 참 아쉽다. 요즘처럼 좋은 환경에서 공 치는 후배들이 부러울 따름”이라며 허허 웃었다.

“가끔 ‘죽어 저세상에 갔을 때 당구가 없으면 난 뭘할까?’란 생각을 해요. 다른 건 할 줄 아는 데 없거든요.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하하. ”

 

[파주=이상연 기자/큐스포츠뉴스 취재부장]

기사제보=sunbisa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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