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규(인천광역시체육회,29)는 스누커 종목에서만 14년 차의 베테랑이다. 스누커 불모지인 한반도에서 매우 이례적으로 돋은 새싹이 꽃을 피우고 만개해 국가를 대표하는 ‘토종 스누커 선수’로 자리한, 한국당구계의 희귀하고 소중한 케이스다.
부모님의 권유로 15살에 큐를 잡은 그는 가파른 성장세를 타며 숱하게 전국대회 시상대 맨 꼭대기에 서 왔다. 이처럼 탄탄대로를 걷던 이대규의 최근 마음속에서는 ‘슬럼프’가 연주하는 비통함의 곡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샷이 망가져서다. 스트로크로 먹고사는 당구선수에겐 치명적 결함이다. 샷 팔로스로우 시, 스누커 선수에게 불필요한 동작들이 이것저것 붙어있었다. 그래서 이대규는 이번 ‘제105회 전국체육대회’(2024 전국체전)에 앞서 보름 가까이 ‘14년 전 초심자’ 당시의 자신을 떠올리며 샷에 묻어 있는 불필요한 것들을 떼는 데 매진했다.
이렇게 ‘청소’된 샷으로, 이대규는 14일 오후 경남 통영실내체육관서 펼쳐진 ‘2024 전국체전’ 스누커 종목서 작년도 금메달리스트 박용준(전남)을 프레임스코어 2:0으로 제압, 올해의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그로선 지난 2019년도 전국체전 이후 5년만에 딴 ‘스누커 금’이다.
소감을 물었다. “2년 가까운 슬럼프를 겪으며 켜켜이 쌓인 가슴속 응어리가 다소 풀어진 듯하다”면서 홀가분해 보이는 표정을 슬쩍 흘린다. 다만, 눈가에서는 금방이라도 툭 터져나올듯한 눈물을 온 힘을 다해 틀어막는 중이었다.
감사한 이를 묻자, 인천시체육회 당구팀 이완수 감독과 동료 선수들, 그리고 인천시체육회 전담 멘탈 트레이너(이상우, 스포츠 심리학 박사)를 꼽았다.
“(이완수)감독님이 이번 체전을 앞두고 제게 대단히 많은 시간과 정성을 투자해주셨어요. 언급했던 샷 재정립 과정을 함께해주신 분이죠. 팀 동료들의 응원이 있던 건 물론이고요. 멘탈 트레이너 선생님께서는 결과보다 현재 주어진 것에 생각의 초점을 맞추는 ‘과정집중’, 긍정적인 사고 등을 제게 주입 시켜주셨어요. 큰 도움이 됐습니다. 감독님-동료들-멘탈 선생님, 모두에 감사드립니다.”
속마음을 털어놓은 이대규는 이어 자신만의 ‘슬럼프 론’을 내놓는다. “아주 힘들지만, 더 나은 선수로 진보하기 위해서는 한 번쯤 겪어야 하는, 일종의 성장통”이란 것.
성장통은 때론 절망감을 키워낸다. ‘절망’에 관해, 소설가 이문열은 『젊은 날의 초상』에서 ‘절망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치열한 열정’이라 했다. 때론, 가슴아픈 절망감이 열정의 연료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젊은’ 당구선수 이대규는 절망(슬럼프)의 경험을 본인의 스누커에 대한 열정 온도를 더 높일 뗄감으로 쓸 심산임을 밝혔다.
인터뷰 말미에 이대규에게 그간 마음고생 심했을 자신을 향한 ‘위로’의 한마디를 요청했다. 하지만 “더 혼나야 한다”는 ‘채찍’이 위로 대신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시야는 국내를 넘어 스누커 본산인 영국, 더 구체적으로는 ‘월드스누커투어’ 무대로도 확장돼 있다. 따라서 지금 그의 정서는 달콤한 자기만족보다는 쓰디쓴 담금질을 더 원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이대규는 15일부터 이번 체전 잉글리시빌리어드 종목에 나선다. 각오는 “저는 무조건 금메달 딸 겁니다”였다. 오랜만의 ‘전국체전 스누커 금’으로 기분이 좋아졌고, 또 멘탈도 강화시키고 나와 자신 있는 눈치였다.
[통영=이상연 기자/큐스포츠뉴스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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