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깥은 초여름 햇살로 다소 따스했고, 서울 강남의 무인당구장 ‘당구야놀자 3호점’ 내부는 그보다 훨씬 더 뜨거웠다. 6대의 당구대 위에선 2010년생 여자 중학생 32명이 각자의 큐를 들고 섬세하게 공을 쳐내고 있었다. 큐 끝에서 튀어나가는 공, 그 공이 맞닿는 순간마다 쾌감 섞인 탄성이 당구장 안을 메웠다.
보통 남성들로 가득한 풍경이 익숙한 당구장에서 여학생들의 당구 삼매경은 꽤나 낯설었지만, 그래서 더 인상 깊었다.
이는 서울 강남 8학군 내 진선여자중학교 학생들이 서울당구연맹(회장 유진희)의 지원 아래 참여한 ‘2025 KBF 유청소년클럽리그(이하 아이리그)’의 현장 풍경이다.
서울연맹, 부활한 ‘아이리그’ 전국 첫 개시
강남 진선여중 32명 소녀들, 당구 입문
김동룡 비롯 선수-심판 등 전문가들의 지도
올해 전격 부활한 대한당구연맹의 ‘KBF 아이리그’. 유청소년을 위한 생활체육 리그로, 당구라는 종목을 통해 다양한 스포츠 참여 기회를 제공하고 유망주 발굴까지 염두에 둔 뜻 깊은 사업이다.
그것의 전국 첫 무대가 바로 이 ‘서울연맹의 진선여중 대상 교육’이다. 지난 5월 7일 제1차 리그에 이어, 이날은 해당 교육의 두 번째 수업일이었다. 총 4회 리그와 2회의 한마당 클리닉, 마지막 ‘Q페스타’라는 시즌 피날레까지 예정돼 있는 장기 프로젝트의 초입부이기도 했다.

이날 32명의 학생들은 조별로 4명씩 팀을 이뤄 리그에 참여했다. 이들을 지도하는 서울당구연맹 소속 강사진은 총 10명(운영진 포함). 그중엔 ‘세계 여자3쿠션 랭킹 1위’ 출신 김하은의 스승 김동룡도 포함돼 있다.
김동룡 지도자는 “아이들이 당구로 인해 밝은 얼굴을 보여 흐뭇하다. 습득력도 빠르고, 교육이 끝나면 상당한 진전이 있을 것”이라며 웃었다. 그가 아이들과 나누는 눈높이의 대화와 미션 제시 속에서, 당구장은 어느덧 활기찬 체험학습장이 돼 있었다.

진선여중 전종주 지도 교사, 現 서울연맹 심판
“교육 예상 모집인원 15명, 40명 몰려 화들짝”
아이들의 활력을 가장 가까이서 바라보는 이는 진선여중의 전종주 교사다. 그는 서울당구연맹 심판이자 현재 미술을 가르치는 교사. 평소 당구를 사랑하던 그는, 신체 부담이 적고 두뇌 회전이 필요한 당구가 학생들에게 어울릴 것이라 생각했고, 1년 전부터 교내 당구 동아리 구상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아이리그 부활 소식을 접한 그는 서울당구연맹과 뜻을 모았고, 그렇게 그의 제자들의 ‘큐 도전’은 시작된 것이다.
“처음엔 15명 정도 예상했는데 40명이 지원했어요. 이를 기획한 저조차도 놀랐을 정도로 큰 관심도였죠.”
전 교사는 지원자 중 32명의 학생(A반 16명, B반 16명씩)을 선발, 학부모 동의를 포함한 절차를 거쳐 아이리그에 투입했다.

학생들 “당구의 재미? 공 칠 때의 쾌감”
이날 당구장 한쪽에선 쉬는 시간 10분에도 큐를 내려놓지 않는 3명의 학생이 눈에 띄었다. 큐를 잡은 채 테이블에 엎드려 선생님의 지도에 온 몸을 집중시켰고, 자세를 고치고 또 고친다. 이들과의 인터뷰에서 그들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당구의 재미요? 쾌감이 있어요.”
김예은 학생은 “당구가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어요. 선생님이 내주신 밀어치기 미션을 성공했을 때, 샷의 섬세한 차이로 결과가 달라지는 게 흥미로웠어요. 자세도 더 나아졌어요”라며 테이블로 눈을 힐끔거린다. 얼른 돌아가서 수업 끝나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공을 치고 싶은 눈치였다.
임주이 학생도 맞장구친다. “공이 딱 맞았을 때 쾌감이 엄청나요. 두 번 안에 미션을 성공하면 더 짜릿해요. 나중에 수업이 끝나도 친구들과 당구장에 놀러오고 싶어요.”
김유이 학생은 가족들과 여행 때마다 당구를 즐기다가 이번 아이리그까지 참여하게 됐단다. “공의 두께와 회전 등에 따라 내공의 진행방향이 어떻게 달라지는 지 여쭤봤다”는 것으로 미뤄, 입사각-반사각에 관한 호기심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역시 유경험자는 달랐다.
‘당구야놀자’ 측, 학생들 학습 전폭적 지원
장사 한창일 때 3시간, 구장 통으로 제공
여중생들의 웃음소리가 당구대 위를 유영하듯 흘렀다. 체육관도, 운동장도 아닌 당구장에서 피어난 이 풍경은 어딘가 낯설고도 신선했다. 그러나 바로 그 생경함 속에서 뜻 깊은 울림이 있었다.
교육장을 찾은 ‘당구야놀자’ 선장덕 대표는 당구에 몰입한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큐를 잡은 작은 손끝에서, 익숙하지 않던 스포츠가 조금씩 삶의 일부가 돼가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뜻 깊은 현장의 풍경은 ‘당구야놀자’ 측의 전폭적으로 지원으로 가능했다.
교육장인 ‘당구야놀자 3호점’은 무인당구장임에도 철저한 시설(대대 4대, 중대 6대 등) 관리로 호평이 이어지는 곳이며, 무엇보다 진선여중에서 도보로 5분 거리라는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이에 서울당구연맹 측이 장소제공을 요청, 연맹-구장 측이 협의를 거쳐 이곳이 교육장으로 확정되기에 이르렀다.
아이리그 수업은 평일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진행되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장사가 한창일 시간. 그럼에도 ‘당구야놀자’ 측은 구장을 기꺼이 통재로 제공했고, 당구 테이블 세팅은 물론, 청소와 정리로도 지원했다. 또 학생 전원에게 음료 서비스까지 마련해주는 정성을 보였다.

현장을 취재한 기자의 눈에는 이 모든 그림들이 생경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이 공간에서만큼 당구는 기성세대-남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익숙하지 않아서 더 찬란했던 그 풍경, 어쩌면 그것이 한국 당구의 미래를 밝히는 ‘첫 샷’이었는지도 모른다.

[서울 강남=이상연 기자/큐스포츠뉴스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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