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실상부 ‘당구메카’ 양구군, 그 초석은 누가?… 전재호! 체육회장배·국토정중앙배의 숨은 ‘산파’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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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당구 불모지나 다름없던 강원도 양구군의 당구인들이 의기투합해 우여곡절 끝에 군 예산을 확보, 지역 당구대회의 초석을 다졌다. 이후 양구군은 한 해에 종합당구대회 2개를 치러내는 국내 유일한 지역으로 발돋움, 명실상부 ‘당구메카’ 지역으로서 자리매김 했다. 그 과정의 숨은 ‘산파’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전재호(사진)씨다. 그와 지난 3월 ‘국토정중앙배’ 현장에서 만나 현 ‘당구메카 양구’ 탄생과정의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당구는 왜 안돼? 다른 스포츠는 다 되는데”

이 말이 바로 ‘당구메카 양구’ 탄생의 씨앗이 된 말이다. 30년 전, 당구 불모지나 다름없던 강원도 양구군의 당구인들이 의기투합해 우여곡절 끝에 군 예산을 확보, 지역 당구대회의 초석을 다졌다.

이 대회를 발판 삼아, 대회 규모는 당구 전 종목을 아우르는 ‘레벨 1’ 종합당구대회로 확대됐다. ‘대한체육회장배’와 ‘국토정중앙배’가 바로 그것이다. 이 대회들은 당구계에 지자체 예산확보 모델을 제시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받았다.

그 역사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그 중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은 바로 전재호(55)씨. 그가 본지와 지난 3월 벌써 13번째 막을 올린 ‘국토정중앙배’ 현장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서 전 씨는 무려 30년 전으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간 뒤, 그 후 십수년간 달려온 ‘양구군 전국대회 개최’ 과정의 뒷이야기들을 풀어냈다. 일문일답을 통해 그의 과거 시간들을 따라가 본다.

 

본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전재호씨. 90년대 후반, 공무원으로 일하던 그는 그와 뜻을 함께하는 당구모임 회원들과 함께 지역 당구대회 개최를 위한 예산확보 과정 등에 발벗고 나섰고, 그것이 선례가 돼 훗날 양구군의 전국대회 유치로도 이어진다.

 

▲큐스포츠뉴스 독자들과 전국 당구인들에게 자신을 소개해 달라.

=동호인 생활을 시작으로 90년대 후반까지 양구군 대표로 여러 대회에 출전해왔다. 양구군당구연맹 사무국장(1995~2013)과 수석부회장을 역임하며, 그 시절에는 양구군청 공무원으로도 일했다(1993~2008). 2019년 4월 1일, 양구군에 ‘라젠당구클럽’을 열어 지금도 운영 중이다. 현재는 컨테이너를 저렴한 가격에 임대 매입 판매하는 ‘청춘양구컨테이너’, ‘청춘양구크레인’, 철근 도소매 공급 판매처인 ‘청춘양구철강’ 등 사업체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양구군의 첫 전국규모 당구대회인 대한체육회장배 유치에 큰 역할을 했다고 들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후) 30년 전인 1995년 3월 25일, 저를 포함해 6명의 전문선수 출신들이 모여 당구 모임을 결성했다. 당시 우리는 양구군민 문화대축제인 ‘양록제’의 읍면대항 체육대회 종목으로 당구를 추가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고, 그 결과 1996년부터 당구대회를 열게 됐다. 저는 행정적인 부분에서 기여했다.

그 결과 당구대회를 30번 넘게 개최할 수 있었다. 대회마다 종목을 4구, 3쿠션, 포켓볼 등으로 바꿔가면서 치러냈다. 이후, ‘당구 종목으로 군수배 대회를 유치하자’는 목표가 생겼고, 2000년대 초반에 군에 요청하여 500만 원을 확보, 양구군수배 당구대회를 2년간 개최할 수 있었다.

 

▲2007년에는 ‘대한체육회장배’가 양구에서 열리게 됐다고 들었다. 그 유치 과정은.

=2006년, 구청 관계자로부터 ‘제2회 대한체육회장배 전국당구대회’가 강원도 춘천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부터 저는 양구에서 제3회 대회를 개최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결국 군비 1000만 원을 확보하며 양구에서 제3회 대한체육회장배가 열릴 수 있었다. 2007년도의 일이다.

 

▲이 과정에서 강석태 前 강원당구연맹 회장의 역할도 컸다고 하던데.

=그렇다. 강석태 전 회장님이 연맹 대의원 총회에서 “양구에서 (대한체육회장배를) 개최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강력히 주장해 주셨다. 그분이 없었다면, 대회가 지속적으로 열리는 것도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대한체육회장배 예산규모가 해마다 증액됐다고.

=대회가 열릴수록 예산이 점차 확대됐다. 4회 3800만 원, 5회 5000만 원, 6회 7000만 원, 7회 7000만 원 등으로 증액됐고, 이는 당구 대회 개최를 위한 지자체 예산 편성에 있어 하나의 롤모델이 됐다고 생각한다.

 

▲이후 대한체육회장배 개최지가 대전으로 이전됐으며, 9회부터 다시 양구로 돌아왔다고.

=맞다. 대전시로 개최지가 이전했던 당시는 양구군에서 생활체육 당구가 행정적인 지원을 받으며 자리 잡고 있던 시기다. 이를 바탕으로 군 관계자를 만나 1억원의 예산을 확보하는 데 성공, 제9회 대한체육회장배가 다시 양구에서 열리게 됐다.

 

인터뷰 후 제13회 국토정중앙배 대회 현장에서 경기들을 관전중인 전재호씨. 이후 그는 여러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고 했다.

 

▲그 후, 탄생한 대회가 국토정중앙배 전국당구대회라고.

=전국규모 종합당구대회가 두 개로 늘어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2011년부터 ‘국토정중앙배 전국당구대회’의 유치 작업에 착수했고, 결국 2013년 첫 번째 대회를 개최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입상 상금이 없었지만, 선수들에게 숙박비, 교통비, 식대 등을 지원함으로써 400여 명의 선수들을 양구로 모을 수 있었다. 또한, 양구군청과 협력해서 ‘양구사랑 상품권’을 배포, 시장에서의 사용을 유도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큰 기여를 했다.

양구군에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만한 일이었다. 대단위 선수단이 지역을 방문해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됐으며, 무엇보다도 방송으로 경기들이 중계되면서 지역홍보(국토정중앙 타이틀 등)에도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그 모든 과정을 이끌어 온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에 언급했던 양구군 당구모임(이후 ‘큐클럽’으로 변경) 발족인 6인이 모두 품었던 의문, “당구는 왜 안돼?”라는 생각이 그 모든 과정의 출발점이다. 그때의 고민이 지금의 ‘대한체육회장배’와 ‘국토정중앙배’를 탄생시킨 원동력이 됐다.

양구군에서는 축구나 다른 스포츠의 대회 예산이 1000만원 이상 배정되는데, 당구는 왜 안 되냐는 것이 우리들 생각이었다. 또 당구도 충분히 발전 가능성이 있는 종목이라고 굳게 믿었고, 그 결과로 대회를 유치하고 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제는 당구와 관련된 일에서 거의 손을 떼었다고 들었다. 바통을 이어받은 양구 지역 당구인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세대교체에 힘써 주었으면 좋겠다. 1997년 양록제 당구대회 당시 출전했던 선수들이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더라. 또한, 실업팀 창단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양구군 내에는 역도, 펜싱, 테니스, 육상 등 실업팀 종목이 있는데, 당구도 그 뒤를 이을 수 있는 강력한 종목이라고 생각한다.

양구군은 전국대회를 두 번이나 치르는 국내 유일한 지역이다. 그 맥을 이어가기 위해 지역 당구인들이 더욱 협력해주기를 바란다. 간절하게.

 

[양구=이상연 기자/큐스포츠뉴스 취재부장]

기사제보=sunbisa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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