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구는 왜 안돼? 다른 스포츠는 다 되는데”
이 말이 바로 ‘당구메카 양구’ 탄생의 씨앗이 된 말이다. 30년 전, 당구 불모지나 다름없던 강원도 양구군의 당구인들이 의기투합해 우여곡절 끝에 군 예산을 확보, 지역 당구대회의 초석을 다졌다.
이 대회를 발판 삼아, 대회 규모는 당구 전 종목을 아우르는 ‘레벨 1’ 종합당구대회로 확대됐다. ‘대한체육회장배’와 ‘국토정중앙배’가 바로 그것이다. 이 대회들은 당구계에 지자체 예산확보 모델을 제시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받았다.
그 역사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그 중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은 바로 전재호(55)씨. 그가 본지와 지난 3월 벌써 13번째 막을 올린 ‘국토정중앙배’ 현장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서 전 씨는 무려 30년 전으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간 뒤, 그 후 십수년간 달려온 ‘양구군 전국대회 개최’ 과정의 뒷이야기들을 풀어냈다. 일문일답을 통해 그의 과거 시간들을 따라가 본다.

▲큐스포츠뉴스 독자들과 전국 당구인들에게 자신을 소개해 달라.
=동호인 생활을 시작으로 90년대 후반까지 양구군 대표로 여러 대회에 출전해왔다. 양구군당구연맹 사무국장(1995~2013)과 수석부회장을 역임하며, 그 시절에는 양구군청 공무원으로도 일했다(1993~2008). 2019년 4월 1일, 양구군에 ‘라젠당구클럽’을 열어 지금도 운영 중이다. 현재는 컨테이너를 저렴한 가격에 임대 매입 판매하는 ‘청춘양구컨테이너’, ‘청춘양구크레인’, 철근 도소매 공급 판매처인 ‘청춘양구철강’ 등 사업체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양구군의 첫 전국규모 당구대회인 대한체육회장배 유치에 큰 역할을 했다고 들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후) 30년 전인 1995년 3월 25일, 저를 포함해 6명의 전문선수 출신들이 모여 당구 모임을 결성했다. 당시 우리는 양구군민 문화대축제인 ‘양록제’의 읍면대항 체육대회 종목으로 당구를 추가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고, 그 결과 1996년부터 당구대회를 열게 됐다. 저는 행정적인 부분에서 기여했다.
그 결과 당구대회를 30번 넘게 개최할 수 있었다. 대회마다 종목을 4구, 3쿠션, 포켓볼 등으로 바꿔가면서 치러냈다. 이후, ‘당구 종목으로 군수배 대회를 유치하자’는 목표가 생겼고, 2000년대 초반에 군에 요청하여 500만 원을 확보, 양구군수배 당구대회를 2년간 개최할 수 있었다.
▲2007년에는 ‘대한체육회장배’가 양구에서 열리게 됐다고 들었다. 그 유치 과정은.
=2006년, 구청 관계자로부터 ‘제2회 대한체육회장배 전국당구대회’가 강원도 춘천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부터 저는 양구에서 제3회 대회를 개최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결국 군비 1000만 원을 확보하며 양구에서 제3회 대한체육회장배가 열릴 수 있었다. 2007년도의 일이다.
▲이 과정에서 강석태 前 강원당구연맹 회장의 역할도 컸다고 하던데.
=그렇다. 강석태 전 회장님이 연맹 대의원 총회에서 “양구에서 (대한체육회장배를) 개최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강력히 주장해 주셨다. 그분이 없었다면, 대회가 지속적으로 열리는 것도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대한체육회장배 예산규모가 해마다 증액됐다고.
=대회가 열릴수록 예산이 점차 확대됐다. 4회 3800만 원, 5회 5000만 원, 6회 7000만 원, 7회 7000만 원 등으로 증액됐고, 이는 당구 대회 개최를 위한 지자체 예산 편성에 있어 하나의 롤모델이 됐다고 생각한다.
▲이후 대한체육회장배 개최지가 대전으로 이전됐으며, 9회부터 다시 양구로 돌아왔다고.
=맞다. 대전시로 개최지가 이전했던 당시는 양구군에서 생활체육 당구가 행정적인 지원을 받으며 자리 잡고 있던 시기다. 이를 바탕으로 군 관계자를 만나 1억원의 예산을 확보하는 데 성공, 제9회 대한체육회장배가 다시 양구에서 열리게 됐다.

▲그 후, 탄생한 대회가 국토정중앙배 전국당구대회라고.
=전국규모 종합당구대회가 두 개로 늘어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2011년부터 ‘국토정중앙배 전국당구대회’의 유치 작업에 착수했고, 결국 2013년 첫 번째 대회를 개최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입상 상금이 없었지만, 선수들에게 숙박비, 교통비, 식대 등을 지원함으로써 400여 명의 선수들을 양구로 모을 수 있었다. 또한, 양구군청과 협력해서 ‘양구사랑 상품권’을 배포, 시장에서의 사용을 유도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큰 기여를 했다.
양구군에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만한 일이었다. 대단위 선수단이 지역을 방문해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됐으며, 무엇보다도 방송으로 경기들이 중계되면서 지역홍보(국토정중앙 타이틀 등)에도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그 모든 과정을 이끌어 온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에 언급했던 양구군 당구모임(이후 ‘큐클럽’으로 변경) 발족인 6인이 모두 품었던 의문, “당구는 왜 안돼?”라는 생각이 그 모든 과정의 출발점이다. 그때의 고민이 지금의 ‘대한체육회장배’와 ‘국토정중앙배’를 탄생시킨 원동력이 됐다.
양구군에서는 축구나 다른 스포츠의 대회 예산이 1000만원 이상 배정되는데, 당구는 왜 안 되냐는 것이 우리들 생각이었다. 또 당구도 충분히 발전 가능성이 있는 종목이라고 굳게 믿었고, 그 결과로 대회를 유치하고 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제는 당구와 관련된 일에서 거의 손을 떼었다고 들었다. 바통을 이어받은 양구 지역 당구인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세대교체에 힘써 주었으면 좋겠다. 1997년 양록제 당구대회 당시 출전했던 선수들이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더라. 또한, 실업팀 창단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양구군 내에는 역도, 펜싱, 테니스, 육상 등 실업팀 종목이 있는데, 당구도 그 뒤를 이을 수 있는 강력한 종목이라고 생각한다.
양구군은 전국대회를 두 번이나 치르는 국내 유일한 지역이다. 그 맥을 이어가기 위해 지역 당구인들이 더욱 협력해주기를 바란다. 간절하게.
[양구=이상연 기자/큐스포츠뉴스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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