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자체 브랜드로 돌파구”… 32년 대구 당구용품 지켜온 ‘영남당구종합상사’ 최채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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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서구 본동 매장에서 32년 재료상 길을 이어온 최채대 대표. 7년 반째 운영 중인 120평 규모 쇼케이스 매장은 360자루 넘는 큐 전시와 시타 공간을 갖춘 전국 유일의 공간이다. 최근 이곳에서 최 대표를 만나 지난 세월과 앞으로의 길을 물었다.

 

 

대구 달서구 본동 한 건물 3층, 120평 규모의 매장에서 영남당구종합상사가 새롭게 문을 연 지 벌써 7년 반. 360자루 넘는 큐를 전시하고 직접 시타까지 가능한 이 공간은 전국에서도 드문 쇼케이스 매장이다. 그러나 최채대(66) 대표의 발자취는 이곳에서만 시작된 게 아니다.

1990년대 초, 그는 당구장 운영으로 당구계에 첫발을 내디뎠고, 곧 당구용품 유통으로 길을 옮겨 지금까지 32년을 이어왔다. 당구재료상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요즘에도 그는 자체 브랜드 개발을 돌파구로 삼아 활로를 모색하고, 힘겨운 시기에도 20년 넘게 지역 후원을 멈추지 않았다. 최 대표의 삶은 곧 당구재료상 산업의 흥망과 궤를 같이한다. 최근 영남당구종합상사 매장에서 그를 만나, 지난 세월과 앞으로의 길을 물었다.

 

석 달 만에 접은 당구장, 재료상으로

최채대 대표의 출발은 당구장이었다. 1990년대 초 계명대 앞에 문을 열었지만 PC방·노래방 열풍에 밀려 불과 석 달 만에 접어야 했다. 당시 대구에는 1,800여 개에 달하던 당구장이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200개 수준으로 급감했다.

이후 그는 북부정리 시장 인근에서 ‘TBC 당구장’을 운영했고, 1995~96년 소모품 몇 가지로 재료상 길에 들어섰다. 자본금은 200만 원 남짓. 이후 수차례나 매장과 당구장을 옮겼고, 당구대 수리와 납품, 인테리어, 그리고 중고 당구대 해외 판매(중고 테이블 등)까지 손을 뻗어 시장에서 조용하게, 그러나 탄탄하게 기반을 다졌다.

 

영남당구종합상사 매장 전경. 수백자루가 넘는 큐를 비치할 수 있는 전시공간, 시타를 위한 테이블 등이 120평 대형 규모의 공간에 조성돼 있다.

 

7년반 전 쇼케이스 매장’, 새로운 출발점

2018년, 최채대 대표는 달서구 본동 현 위치로 자리를 옮겼다. 7년 반째 지켜온 이 매장은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니라, 당구인들을 위한 체험형 쇼룸으로 기획됐다.

그는 건물 3층 전체를 임대해 당구용품을 전시하고 시타 공간을 마련했다. 특히 전시장 벽면을 따라 큐를 진열할 수 있도록 직접 도안을 그려, 손님들이 “한눈에 보고, 곧바로 잡아보고, 곧장 쳐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매장 메인 공간에는 실제 경기용 테이블을 설치해 고객이 구매 전 큐의 무게와 타구감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게 했다.

메인공간 한쪽 코너에는 소모품과 악세서리 코너, 메인 공간 외 다른 공간에는 창고와 사무실로 구획해 운영의 효율도 높였다. 덕분에 이곳은 단순한 매장이 아니라 “대구·경북 당구인들의 놀이터 같은 공간”으로 불리며, 지방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쇼케이스 매장으로 자리 잡았다.

 

영남당구종합상사 메인공간 외 다른 공간에는 창고와 사무실로 구획해 운영의 효율을 높였다. 창고에서 보유 제품들을 설명한 뒤 촬영에 임한 최 대표.

 

그립·팁 그리고 큐자체 브랜드로 돌파구

대한민국 재료상 시장은 코로나19, 환율, 전쟁 여파로 직격탄을 맞았다. 원자재와 물류비는 치솟고 판매량은 줄어 전국 재료상은 급감했다. 이런 현실에서, 영남당구종합상사는 자체 브랜드 개발을 돌파구로 삼았다.

우선 큐다. 최 대표가 큐 제작에 뛰어든 이유는 분명했다. 남들 물건만 팔아서는 더 이상 길이 없다는 판단이었다. 소모품 유통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했고, 당구재료상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자기 이름을 건 브랜드가 필요했다. 게다가 100만 원을 훌쩍 넘는 고가 큐는 팔리기 어려웠고, 실제 시장 수요는 50만~120만 원대 중저가 라인에 집중돼 있었다. “앞으로 10년은 내 브랜드로 버텨야 한다”는 각오가 결국 블랙이글과 벤탐 큐로 이어졌다.

첫 번째 성과는 ‘블랙이글’ 큐다. 2019년 중국 OEM 방식으로 출시했지만 초창기 하자가 발생해 수천 자루를 무상 교체해야 했다. 최 대표는 “내가 팔았으면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각오로 5000자루 이상을 직접 보수했다”고 회고했다. 이후 소재를 개선해 지금은 안정적인 품질을 시장에 내놓고 있다.

이어 선보인 ‘벤탐’ 큐는 블랙이글보다 상위 포지션을 겨냥한 신제품이다. 가격대는 고가 라인이 220만~250만 원, 중저가 라인이 50만~120만 원으로 나뉜다. 지난해 본큐를 먼저 선보였고, 곧 상대(shaft)도 출시될 것으로 예고됐다.

‘벤탐’ 큐에 관한 설명하고 있는 최 대표.

 

그는 “가격 경쟁력 있는 내 큐 브랜드를 반드시 안착시키겠다”고 말했다. 360자루를 전시할 수 있는 매장 진열 공간의 상당 부분을 일부러 비워둔 이유도 바로 새 브랜드 큐를 채워 넣기 위해서다.

 

큐 진열장 일부가 비어져 있다. 자체 브랜드 ‘벤탐’ 큐를 전시할 공간이라고 한다.

 

소모품도 빼놓을 수 없다. ‘블랙이글 그립’은 천연 라텍스를 사용해 촉감과 내구성을 높였고, 지금까지 약 2만 개가 팔렸다. 뒤이어 출시된 ‘매직그립'(상대적으로 저가 그립)은 초도 물량만 10만 개를 제작했는데, 불과 1년 반 만에 15만 개 이상이 판매되며 사실상 시장을 평정했다. 타사 저가 그립들보다 조금 높은 시장가(2500~3000원대)에도 “가격 대비 그립감이 뛰어난 제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전국 당구장과 동호인들 사이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제품으로 자리 잡았다.

 

영남당구종합상사의 효자 상품들이라는 자체 브랜드 그립을 앞에 두고 미소를 지어 보이는 최채대 대표. 왼쪽이 블랙이글 그립, 오른쪽이 누적판매 개수 무려 15만장이라는 매직그립이다.

 

팁 개발에도 도전했다. ‘스핀팁’은 초기 흰색 라인 디자인에서 때가 쉽게 타는 문제를 개선해 검정·갈색으로 바꿔 2만 개 이상 생산됐다. “탄성과 강도를 동시에 잡겠다”는 목표로 연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사실 그의 첫 도전은 ‘아라크네’라는 브랜드였지만, 품질과 시장의 벽을 넘지 못해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그 시행착오가 훗날 지금의 큐 브랜드들을 낳는 밑거름이 됐다. (현재 KBF 디비전리그에서 활동중인 ‘아라크네’ 팀의 명칭이 바로 이것에서 나온 것이다)

 

20년 넘게 이어온 지역 후원

영남당구종합상사는 20년 넘게 지역 후원을 이어왔다. 대구당구연맹 선수단 식사 지원으로 시작해 아마추어 대회 현금·현물 협찬, 유망주 지원까지 끊임없이 이어왔다. 코로나와 경기 침체로 업계 전체가 얼어붙은 시기에도 후원은 멈추지 않았다.

“거래 여부를 따지지 않았습니다. 대구에서 열리는 대회라면 늘 도왔습니다.”

대회 현장에 김밥 수십 줄을 보내고, 선수단 회식비를 부담하는 일은 일상이었다. 지금도 대구에서 열리는 대부분의 대회에는 ‘영남당구종합상사’라는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최근에는 대구당구연맹(회장 한상호)과 공식 후원 협약을 체결했다. 긴 호흡으로 이어온 지역 당구계 후원을 연장하는 계약이었다.

 

어린선수들 오면 퍼주고 싶어

최 대표는 학생선수 등 지역의 어린 선수들을 위한 지원을 강조했다.

“열심히 하고 싶지만 환경이 힘든 어린 친구들, 그 외 자신의 꿈을 정진해 나가는 학생들이 참 많아요. 그런 친구들에게 장비를 지원하고 훈련을 돕는 것이 결국 당구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실제로 청소년 대회 입상자들에게 큐와 용품을 선물하며 선수들이 운동을 이어가게 한 사례도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또 대구 출신인 김도경 장가연 권발해 등 선수들에게도 나눔을 한 적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구는 제게 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평생의 동반자입니다. 지금처럼 힘든 시기에도 후배와 학생 선수들을 지원하면서 당구계가 끊어지지 않기를”이란 바람을 전했다.

그는 생활스포츠와 프로가 함께 성장하는 길을 바란다. “조금만 더 젊은 세대가 흥미를 이어간다면 당구는 다시 큰 흐름을 만들 수 있습니다.”

 

 

내부는 아내, 외부는 나

내 브랜드로, 지역과 함께 계속

그 곁에는 늘 아내가 있었다. 10년 넘는 기간동안 영남당구종합상사의 입출고, 장부, 세금, 고객 응대까지 사모님의 몫이었다. 최 대표는 대외 협찬과 공사를 담당하며 “내부는 아내, 외부는 나”라는 표현으로 회사를 지켜왔다고 했다.

이야기를 풀다 보니 인터뷰는 어느새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긴 회고와 앞으로의 비전을 들려준 끝에 그는 이렇게 말을 맺었다.

“이제는 큰 욕심보다 힘 닿는 데까지 해보려 합니다. 제품 개발은 계속할 겁니다. 지역 후원도 멈추지 않을 겁니다.”

32년 세월, 수차례의 이전, 그리고 수많은 위기를 지나오며 끝내 남은 것은 ‘내 브랜드’와 ‘지역과 함께’라는 철학이었다. 최채대 대표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대구=이상연 기자/큐스포츠뉴스 취재부장]

기사제보=sunbisa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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