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습한 만큼 결과가 눈앞에 드러나는 그 순간, 당구는 늘 새롭고 짜릿해요. 아직 알아갈 것도, 성장할 일도 많아 매일이 설렙니다.”
지난 8월 5일, 고양 킨텍스 PBA 전용구장. 시즌 3차전 개회식 직후 만난 박예원(25)은 이렇게 말했다.
아마추어 바둑 여자랭킹 1위 등을 찍으며 13년째 바둑에 몸담아온 그는, 올해 LPBA 2년 차를 맞은, 이른바 ‘양방 선수’다.
올시즌에는 바둑과 당구, 두 개의 길을 동시에 빠짐 없이 꽉 채워 걷는다. 그는 9월부터 연말까지 이어지는 바둑 전문선수 대상 대회들과 함께, 전국체전에도 울산시 대표로 출전할 예정이다. 동시에, LPBA 투어 역시 풀로 소화할 계획이다.
인터뷰 당시 그는 2025-26시즌 3차전 ‘올바른 생활카드 NH농협카드 LPBA 채리티 챔피언십’ 32강에 올라 있었고, 이 성적은 프로 데뷔 이후 그의 최고 기록이었다.
그 경기를 하루 앞둔 날, 우리는 바둑과 당구라는 두 무대를 동시에 살아가는 그의 내면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인터뷰 다음 날(8월 6일), 그는 지난 시즌 LPBA 개막전 준우승자 임경진(하림)을 상대로 승부치기 끝에 큐를 놓지 않았고, 데뷔 후 첫 16강 진출에 성공했다.(16강 상대는 김다희)
그 짜릿한 경기를 앞두고 박예원이 들려준 건, 익숙했던 바둑에서 벗어나 다시 처음부터 무언가를 배워나가던 순간의 이야기였다.
우연처럼 시작된 당구는, 그에게 새로운 감각이자 다시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됐다. 스스로를 다시 세우듯 큐를 들었고, 그 안에서 잊고 있던 즐거움을 조금씩 다시 배워갔다.
더 자세한 사연을 박예원의 말로 들여다본다.

“큐를 잡은 건, 사실 아버지 제안(웃음)”
“의지하던 선생님의 급작스런 부재”
초등학교 6학년, 본가인 수원을 떠나 서울의 바둑 유망주 기숙학원에서 생활을 시작한 박예원은 바둑 명문 충암중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충암고등학교가 남고(男子高)였기에, 고등학교 학업은 방송통신고로 전환해 병행했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바둑 전문선수로 수년째 활동 중이다.
그러나 그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바둑은 실력이 늘고 있는 건지,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감이 잘 안 올 때가 많아요. 정체된 느낌이 오래 쌓이면, 마음이 흔들리기도 하죠.”
이런 가운데, 그의 인생의 전환점은 예기치 않게 다가왔다. 아버지의 권유였다. 스트레스를 풀어보라는 말과 함께 서울의 한 당구 아카데미에 반강제로 등록했고, 그렇게 큐를 처음 잡게 된 것이다.
그것이 불과 3년 반 전의 얘기다.
“처음엔 주 2회, 하루 2~3시간만 연습했어요. 10년 넘게 앉아서 하는 바둑만 하다가, 서 있는 것도 버거울 정도로 당구는 낯선 스포츠였죠.”
하지만 그곳에서 그는 운명적인 인연을 만났다. 생애 첫 당구 스승 이용진 선생이었다. 여러모로 의지하던 그 선생님. 하지만 아쉽게도 그 인연은 오래가지 못했다.
“스승님이 너무 젊은 나이에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그때 당구를 진지하게 해보려고 마음먹던 차였는데… 충격이 컸죠.”
강차당구연구소와의 인연 1년여
새 선생님들의 철학-연습 태도에 감명
박예원은 아카데미에서 막 당구를 배우기 시작했을 당시, 대대 점수는 18점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주변의 권유로 서울당구연맹 선수로 1년간 활동했고, 전국대회 최고 성적은 16강 진출이었다.
그러던 중, 첫 스승의 갑작스러운 부재 속에서 다시 방향을 고민하게 됐다. 부모의 권유로 새로운 스승을 찾아 나섰고, 서울에서 자취하던 그는 본가인 수원으로 거처를 옮긴 뒤, 일주일 만에 동탄에 위치한 ‘강차당구연구소’에 입소했다.
수원과 멀지 않은 이곳에서, 그는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훈련을 이어오고 있다.
그곳에서 만난 강동궁·차명종 프로는 단순한 지도자를 넘어, 그의 당구 인생을 함께 설계하는 존재가 됐다.
“차 프로님에게 전담 지도를 받고 있어요. 강 프로님도 시간 날 때마다 공을 봐주시고요. 두 분 덕분에 정말 많이 늘었어요.”
지도자들의 당구 철학과 연습 태도는 그에게 깊은 영향을 줬다.
“강 프로님은 섬세한 공도 잘 치시고, 파워도 엄청나요. 겉보기엔 사교적이고 밝지만, 뒤에서 정말 많은 연습을 하세요. ‘이렇게 잘 치는데도 저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차 프로님은 공의 원리와 시스템을 설명하실 때, 정말 깊이 연구하신 게 느껴져요. 그분들을 보면서 저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느껴요. 두 분 덕분에 짧은 시간 안에 성장할 수 있었어요.”
바둑은 최정, 당구는 야스퍼스-김가영 “존경”
“작년엔 당구에 집중하느라 바둑 대회는 거의 쉬었고, 올해는 일정이 겹치지 않으면 바둑과 당구를 병행합니다.”
바둑 내에서는 프로 입단의 부담과 반복되는 토너먼트로 인해 압박이 컸다. 무엇보다 “바둑은 노력의 결과가 바로 드러나지 않고, 어느 수준에 놓이면 실력의 정체 구간도 와 힘들 때가 있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새로운 그의 취미이자 직업인 당구는 확실한 보상감을 안겨줬다.
“당구는 연습한 만큼 그 결과가 바로 눈앞에 나오니까, 그 보상감이 정말 짜릿합니다. 아직 알아갈 게 많아요, 그래서 설레요”
박예원은 “바둑은 전략과 계산, 당구는 감각과 응용이 필요하지만, 복기와 심리전이 중요하다는 점은 닮았다”고 말한다. 그의 정신적인 루틴 역시 바둑에서 이어져 왔다. “아버지가 늘 강조하신 ‘심호흡’으로 마음을 다잡아요. 시합 직전에는 특히 더요.”
가장 좋아하는 바둑 선수는 ‘여자 최강’ 최정, 당구에서는 인간 줄자 ‘야스퍼스’를 꼽았다. 그리고 그 곁에 강동궁, 차명종이라는 두 이름도 덧붙였다.
“저는 아직 경험도 부족하고, 도전 중인 입장이에요.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시간과 노력을 다해 올 시즌 좋은 성적 남기고 싶습니다.”
당구와 바둑, 두 길을 함께 걷는 박예원. 그 여정은 여전히 불완전하지만, 새로운 것을 알아가며 쌓아가는 하루하루가 그에겐 무엇보다 소중하다.
[이상연 기자/큐스포츠뉴스 취재부장]
기사제보=sunbisa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