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숙명의 이름 앞에서, 여전히 가장 위에 있는 이름은 김가영(하나카드)이었다. 포켓볼 시절부터 15년 넘게 한국의 여자당구계를 ‘쌍두마차’로 달려온 차유람과의 여섯 번째 프로 무대 맞대결. 이번에도 승자는 김가영이었다.
22일 밤,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PBA 스타디움에서 열린 ‘우리금융캐피탈 LPBA챔피언십 2025’ 결승전.
김가영은 차유람(휴온스)을 세트스코어 4:0(11:1, 11:6, 11:2, 11:6)으로 완파하고, LPBA 개막전 트로피를 처음으로 들어 올렸다.
김가영은 경기 후 “유일하게 갖지 못했던 우리금융캐피탈 트로피를 드디어 들어 행복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우승으로 김가영은 또 하나의 경이로운 금자탑을 세웠다. 통산 50번째 투어 출전, 20번째 결승 진출, 그리고 15번째 우승. 이로써 8개 대회 연속 우승과 함께, 231전 194승이라는 대기록을 완성했다.
우승 상금 4,000만 원을 추가하며 누적 상금은 7억 2,180만 원. LPBA는 물론 PBA 전체를 통틀어도 상금 순위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그러나 이날의 승리는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김가영과 차유람, 두 사람은 2000년대 초중반 한국 여자 포켓볼계를 함께 이끈 쌍두마차였다.
이후 김가영은 프로당구 무대에 성공적으로 안착해 LPBA의 ‘여제’로 군림했고, 함께 프로 전향했던 차유람은 긴 공백기를 지나 다시 큐를 들었다.
그리고 이번 시즌 마침내 결승 무대에 두 선수가 나란히 섰다. 이전 다섯 번의 대결에서 모두 패했던 차유람에게 이번 결승은 5전6기의 무대였지만, 여섯 번째 문도 열리지 않았다.
김가영은 “이번에도 우여곡절 많았다. 애버리지가 0.7 나오기도 하고…”라며 웃은 뒤, 상대를 향한 존중의 마음을 이렇게 드러냈다.
“결승까지 올라오는 동안 유람이의 경기력이 참 좋았어요. 꼭 결승에서 다시 만나길 바랍니다. (관중석을 빙 둘러본 뒤)차유람 선수에게 박수를 보내주세요.”

실제로 차유람의 부활 서사는 이번 시즌 개막전부터 인상 깊게 쓰이고 있다.
그는 “아이 방학과 개인 일정 등으로 연습할 시간이 많지 않았음에도 좋은 성적을 낸 건, 작년부터 쌓아온 것들이 차곡차곡 쌓였기 때문 아닐까 싶다”며, “그래서 다음 대회가 참 기대된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런 서사가 흘러나온 이날 밤 유튜브 생중계 채팅창에는 두 선수 모두를 향한 응원과 격려가 쏟아졌다. 그러나 결승 테이블을 내려오는 마지막 순간, 스포트라이트와 환호는 단 한 사람을 향했다. LPBA의 ‘영원’을 향해, 여전히 당구대 위에서 ‘진짜’를 증명한 이름. 바로 김가영이었다.
다만, ‘여제’의 바람처럼, 두 선수의 또 한 번의 정상 맞대결을 기다리는 팬들 역시 많아지고 있다.

한편, 한 대회에서 가장 높은 한 경기의 애버리지를 기록한 선수에게 주는 웰컴톱랭킹 상은 임정숙(크라운해태)이 수상했다. 김보름과의 64강전을 단 9개닝만에 이기며 기록한 애버리지는 2.778. 역대 공동2위의 대기록이었다.
[일산=이상연 기자/큐스포츠뉴스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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