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쳤는지 모르겠어요. 아직도 얼떨떨해요.”
현역 바둑 전문선수이자 LPBA 2년 차 선수인 박예원(25)이 당구 인생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섰다.
그는 7일 밤,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2025-26시즌 3차전 ‘올바른 생활카드 NH농협카드 LPBA 채리티 챔피언십’ 16강전에서 최근 팀리그에서 맹활약을 펼쳐 기대를 모은 김다희(하이원)를 세트스코어 3:1로 꺾고 8강에 진출했다.
이로써 박예원은 지난 경기에서 임경진(하이원)을 꺾고 16강에 오른 데 이어, 이번엔 같은 팀의 주축으로 떠오른 김다희마저 무너뜨리며 자신의 LPBA 커리어 하이를 새롭게 썼다.
경기 직후 박예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승리의 기쁨보다는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투어에서 처음으로 맞은 세트제 방식에 대해선 여전히 적응 중이라는 속내를 드러냈다.
“25점제는 흐름이 이어지니까 경기 중이나 끝난 뒤에 복기가 잘 되는 편인데요, 세트제는 흐름이 좀 오나 싶으면 끝나고, 뺏기면 그대로 끝나버려서 정신이 없어요. 그럼에도 좋은 결과가 나와줘서 기쁘네요.”
한편, 박예원의 이 놀라운 행보 뒤엔 그를 묵묵히 뒷받침한 이들의 존재가 있었다.
그는 1년 넘게 몸담고 있는 강차당구연구소에서 강동궁(SK렌터카), 차명종(인천광역시체육회) 두 선배이자 스승의 지도를 받고 있다. 그들의 조언은 어쩌면 당연하지만 내용이 분명했고, 실제 경기에서도 효과를 발휘했다.
“두 분 다 ‘처음이니까 떨리는 게 당연하다, 침착하게 한 점 한 점 최선을 다하라’고 말씀해주셨어요. 특히 32강전 진출 직후에요. 그 말이 실제 경기 때 큰 힘이 됐어요.”
부모님의 격려도 뺄 수 없다.
32강전에서 승부치기 끝에 승리하긴 했지만, 에버리지 0.471로 경기력 자체에 아쉬움이 컸다는 박예원은, 속상한 마음을 어머니에게 털어놨고, 돌아온 답은 단호하면서도 따뜻했다.
“어쨌든 이긴 건 잘한 거다. 너는 잃을 게 없다. 그냥 큐 들고 치고 오면 된다.”
이 한마디에 굳게 경직돼 있던 마음이 한층 풀어졌다고 박예원은 털어놨다.
또한 박예원은 고마움을 전할 한 사람으로, 일본의 ‘여자 3쿠션 레전드’ 히다 오리에를 꼽았다.
64강전에서 맞붙었던 히다는 그와 한솥밥을 먹고 있는 SK렌터카의 주장 강동궁과의 인연으로 강차당구연구소를 자주 찾는단다. 그럴 때마다 박예원에게 “샷이 좋아졌다” 등의 칭찬을 아낌없이 건네며, 최근에는 25점제 스파링까지 함께 해준 고마운 언니이자 선배였다.
“히다 언니는 성격이 정말 좋으세요. 경기 외적으로도 항상 밝게 인사해주셔서 늘 감사한 마음을 늘 갖고 있어요. 64강 때도, 덕분에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임할 수 있었어요.”
박예원의 다음 상대는 LPBA의 대표 스타 스롱 피아비(우리금융캐피탈). 두 선수는 8일 밤 8시 30분 열리는 8강전에서 준결승 진출을 두고 맞붙는다.
박예원은 이번 대회 PQ(예선 2차)에서 오수정을 꺾고 본선에 올라, 64강전에서 히다 오리에, 32강에서 임경진, 16강에서 김다희를 연달아 잡아냈다. 이어지는 8강 상대는 최근 2차전 우승을 거머쥐며 절정의 컨디션을 자랑하고 있는 스롱 피아비다.
박예원은 직전 시즌(2024-25) 하노이오픈 64강전에서 스롱과 맞붙어 12:19로 패한 바 있다. 당시를 떠올리며 “된통 깨졌다”고 말한 그는, 이번에는 한층 벼른 마음으로 경기에 나선다.
한편, 박예원은 울산시 소속으로 전국체전까지 출전하는 바둑 전문선수이기도 하다. 올 시즌부터는 바둑(9월부터 시즌 시작)과 당구를 병행하며 두 무대를 모두 완주하겠다는 각오로 시즌을 시작했고, 그 다짐의 시작점에서 프로당구 무대에서 스스로도 예상치 못한 성과를 거두며 자신의 다짐을 화려하게 꾸며나가고 있다.
바둑 13년차, 프로당구선수 2년차. 그의 ‘선수 인생 제2의 대국’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그 결말을 향한 당구 팬들의 시선이, 박예원의 큐 끝에 모이고 있다.
[이상연 기자/큐스포츠뉴스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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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P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