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에 은퇴한 당구선수가 50대에 다시 큐를 잡고 프로무대로 향했다. 그리고 2개 대회만에 4강을 밟았다. 소감은 “당구는 여전히 짜릿하다”였다.
그 주인공은 1971년생, 올해로 53세인 ‘PBA 루키’ 공교성이다.
‘2024-25 PBA 드림투어’ 개막전은 공교성이 무려 ‘15년의 공백기’를 끝내고 선수로 복귀해 맞은 첫 대회였다. 결과는 256강서 고배. 이어진 2차전서 그의 최종성적은 4강으로 크게 점프했다. 현재 시즌 3차전을 소화중인 64강전(대 차채우, 12일 11시30분)을 앞두고 있다.
섬세한 감각으로 공을 다루는 당구선수들에게 실전 감각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 감각을 오랫동안 단절한 공교성이 복귀 후 단 2개 대회만에 파죽지세로 4강에 오르자, 당시 대회 현장이 술렁였다. 또한, 공백기 당시 그의 행적이 현장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15년간 뭐 했느냐고요? 큐를 완전히 놓고 치킨집, 반찬가게 했어요. 다행히 장사가 꽤 잘 됐어요. 그사이에 감사하게도 두 자녀가 잘 장성했죠.
공교성은 지난 2010년대 초반까지 인천당구연맹을 거쳐 강원당구연맹 선수로 활동하며 지역에서 알아주는 선수로 명성을 쌓아왔다. 그러던 그가 자영업으로 눈을 돌린 건 생계 때문이었다.
”인천연맹 시절 운영하던 당구장이 잘 됐죠. 그러다가 강원도 춘천으로 적을 옮겨 ‘담배연기 없는’ 테이블 4개 규모의 대대전용 당구장을 차렸지만, 벌이가 쉽지 않았어요. 하루 매출 10만원 찍기 힘든 날도 많았죠. 그래서 아내와 논의 후 장사를 해보기로 했어요.“
그때부터 공교성의 당구선수 커리어는 멈췄다. 큐를 완전히 놓은 것이다. 대신 그는 프랜차이즈 치킨집 사장님이 됐다.
다행히 본사의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가맹 치킨점들 모두 매출이 상승곡선을 그렸고, 2010년대 중반까지 프랜차이즈 치킨집이 드물었던 강원도 춘천지역 가맹점주였던 공교성 또한 그 흐름을 타 쏠쏠한 재미를 볼 수 있었다.
”튀김용 기름을 빨리 교체하는 등 재료에 돈을 아끼지 않았더니 그 점이 소문이 나더라고요. 하하.“
몇 년간 좋은 흐름을 타던 치킨집 프랜차이즈 업종은 그러나 본사의 사모펀드 인수, 인건비 상승, 세금 인상 등 악재가 겹치며 ‘레드오션’화 돼갔다. 이에 공교성와 아내는 반찬가게로 업종을 변경했다. 그 직후 코로나19가 터져 외식이 강제 금지되는 시기를 맞았고, 동시에 반찬에 대한 수요가 올라가 공교성과 아내는 바쁘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반찬가게는 지금도 이어오고 있다. 지난 6일 드림투어 4강에 오른 공교성은 “오늘 새벽 5시30분에 일어나 반찬 밑작업 하고 바로 일산으로 와 경기를 치렀다”고 했다.
이런 그가 큐를 다시 잡은 건 불과 두달여 전이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공교성은 전도에도 나서고 있는데, 그 대상이 자신과 오래전에 당구로 친해진 대대30점의 동호인이었다. 이에 순전히 전도 목적으로 두달 전 큐를 들었다는 공교성이다.
“당구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그러다 전도를 위해 정말 오랜만에 공을 쳤는데 몇 게임 이기고 지고 하니 더 잘 치고 싶더라고요. 15년간 꺼졌던 당구에 대한 열정이 재차 타오른 셈이죠.”
이렇게 선수시절 열정이 되살아난 공교성은 아내와 논의 끝에 PBA로 시선을 돌리게 됐다. 그리고 1차전부터 주최측 와일드카드 자격을 받아 3차전까지 소화하고 있다. 2차전을 마친 당시 공교성은 “젊고 잘치는 선수들이 많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내 장점인 포지션 플레이를 살려 그런 실력 좋은 선수들을 꺾어보고 싶다”는 각오를 밝혔다.
한편, 인터뷰 말미에 공교성은 그의 인생의 동반자인 아내에게 꼭 전할말이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고집 센 나를 믿어주고 따라와줘 고맙다”는 것. 그리고는 자신의 아내와 자녀 등 가족, 그를 기다려왔던 모든 이들을 향해 “(조금 이르지만)올해를 넘어 내년 시즌에는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의지를 전했다.
인터뷰 내내 사람좋은 미소를 보여주던 그였지만, 마지막 멘트를 전할때만은 눈빛을 강하게 빛냈다.
[일산=이상연 기자/큐스포츠뉴스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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