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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국 수출, 내년 3월엔 제2공장(건평 1500평)까지”… ‘토종 당구공’ 코스모스 김종희 대표 [인터뷰1]

 

 

“43년차 당구인, 내 이야기를 해볼게요.”

최근 경기 파주시 소재 코스모스社 당구공 생산공장서 만난 김종희(61) 대표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운을 뗐다. 이어 18살에 큐를 잡은 뒤 선수, 당구장·당구대 사업가, 국제초청대회 주최자 등 길을 거쳐, 전세계에 ‘토종 당구공’의 우수성을 전파중인 현 코스모스社의 대표까지 달려온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짚어줬다. 그의 자전적 인터뷰를 두 차례에 걸쳐 공개한다.

 

‘헬릭스 비전’ 등 캐롬공에 포켓공까지 수출호조

100억 투입 제2공장, 내년3월 완공예정

‘43년 당구인생’이 응축된 그와의 인터뷰는 무려 2시간 넘게 진행됐다. 그중 가장먼저 풀린 이야기보따리는 김 대표의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코스모스 당구공에 관한 얘기다. 현재는 출시된 ‘공’들, 미래는 자사의 ‘제2공장’ 구축이다.

혹자들의 “무모하다” 지적에도 불구하고, 김 대표는 뚝심으로 한국산 당구공 개발·생산에 전력을 다했다. “실패한 공만 10만개에 달한다”는 피땀 어린 노력 끝에 그는 수십년간 한 외국 기업이 철옹성처럼 버텨온 글로벌 당구공 시장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한국산 당구공’을 보급하는 데 성공한다. 현재 국내는 물론 세계 20여국(수출국)서 코스모스 공을 원하고 있다.

그 행보를 주요 연혁과 제품으로 살펴보자. 지난 2010년부터 당구공 개발(전남 장성에서)에 착수, 2015년에 ‘다이아몬드’ 공이 세상에 나온다. 이어 2020년 가로줄 3개를 포인트로 한 ‘헬릭스’, 그에 진보한 성능과 더불어 가로줄이 6개로 늘어난 ‘헬릭스 비전’까지 선뵀다. ‘헬릭스’에 이어 ‘헬릭스 비전’까지 프로당구 공인구로 선정돼 PBA-LPBA 경기테이블 위에 놓이고 있다. (섬네일 우측의 공이 ‘헬릭스 비전’)

 

기존 ‘헬릭스’에서 코스모스만의 기술적 노하우가 집약돼 한층 업그레이드 된 공이 탄생됐고, 그것이 바로 올시즌 프로당구 PBA-LPBA 투어 공인구인 ‘헬릭스 비전’이다.

 

위에 언급된 건 캐롬 당구공이다. 동시에, 코스모스의 포켓볼 공은 전세계 당구시장의 무려 70%에 육박한다는 글로벌 포켓볼 시장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그 연장선으로 올해 2종류의 신제품, ‘에이팩스’와 ‘플립’이 출시돼 세계로 퍼져나가는 중이다.

업계 대부분이 그로기 상태에 빠졌던 코로나19 시기, 코스모스 공은 우수한 품질이 인정받아 오히려 수요가 더 늘어갔다. 최근엔 그 현상이 더 가속화돼, “총 매출의 약 80%가 수출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코스모스 측 설명이다.

 

코스모스社 ‘헬릭스 비전’. 올시즌 프로당구 PBA-LPBA투어 공인구다. 앞서 역시 프로당구 공인구로 사용되던 ‘헬릭스’의 업그레이드 버전 제품인 셈. 헬릭스는 가로줄이 3개다. 후속작 헬릭스 비전은 가로줄이 6개로 늘었고, 코스모스만의 자체 기술들이 집약됐다.

 

수요를 공급이 쫓지 못해 ‘행복한 비명’을 지른 코스모스는, 이에 100억원란 대자본을 투입해 건평 1500평 규모의 제2공장을 짓기로 했다. 현재 건축중이며, 예상 완공시기는 내년 3월이다.

이를 통해 김 대표는 “주문 후 4~5개월 기다려야 하는 납기가 제2공장 완공 후엔 1~2개월로 대폭 단축될 것”이라며 “1000만불 이상 수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경기 파주시에 위치한 코스모스사 생상공장 전경. 내년 3월에는 건평 1500평 규모의 제2공장이 완공될 예정이다.

 

제품개발 후 독자적 대량생산체제 구축

국가별 3위 아래 재료상 접촉 ‘유통망’ 뚫어

인터뷰 가운데, 김 대표는 코스모스의 첫 제품인 ‘다이아몬드’ 공 샘플을 지긋이 바라보며 “제품 대량생산체제를 갖추는 데 애를 먹었다”고 회상했다. 홀로 화학서적을 섭렵하며 머리를 싸맨 끝에 제품이 나왔으나 이를 양산화할 설비가 없던 것.

“공마다 다른 라인을 구축하고, 그에 맞는 설비를 갖추는 데 또 어마어마한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했다”는 김 대표. 이에 코스모스만의 독자적인 노하우가 듬뿍 담긴 현 생산라인이 갖춰질 수 있었다.

그 다음 과정은 ‘유통망 뚫기’였다. 국가별 1~2등 재료상은 이미 타 업체가 꽉 쥐고 있는 상황. 그래서 그들을 건너뛰고 3~5등 재료상과 접촉해 어르고 달랜 끝에 제품을 해당 국가로 보낼 수 있었다. 그 시간이 2~3년이나 지속됐고, 지금은 오히려 그들이 적극적으로 코스모스쪽에 발주를 넣고 있다.

 

“저는 43년차 당구인입니다. 현재 사업가죠. 그런데 젊었을 때 제가 선수로도 활발하게 활동하며 성적도 냈고, 당구대회를 개최하는 등 당구 관련 여러 분야에서 활동한 걸 모르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선수생활 약 15년, 국내최대 당구장 운영”

“국제초청대회 유치, 이후 당구대 사업시작”

김종희 대표는 선수로 약 15년간 활약했으며, 한때 전국서 꽤 이름 날리던 선수였다. 그 시작점은 지난 1992년. 장충체육관서 열린 전국대회 생활체육부에 은평구 대표로 출전, 200여명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한다. 이 자격으로 서울시선수협회에 등록, 현재까지 수십년 재 이어져 온 그의 당구인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후엔 수원에 당구장을 오픈, 경기도로 이적한다.

당구가 너무 좋아 23살에 당구장을 차린 청년 김종희는 운영구장을 3곳으로 늘리는 등 사업을 넓혀나가다가 29살에 초대형 당구장을 오픈하기에 이른다. 대대4대, 포켓10대, 중대26대 등 총 테이블 40대의 메머드급 당구장이었다. 또한 이 구장 사업자 등록시 세무서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과세특례자’가 아닌 ‘일반과세자’로 등록하는 국내당구장 역사 최초의 사례를 남기기도 한다.

그 당시 당구장들은 세법상 ‘과세특례자’로 분류돼 60평 이상은 영업허가가 나오지 않았다. 중대기준 12대 정도 규모만 열 수 있던 시절이었다. 이에 시청건축과와 세무서에 이의를 제기, 평수제한 없이 당구장 열 수 잇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 방안으로 건축법상으로 일반상업시설 내에 정식으로 당구장업으로 등록하고, 그에 합땅한 시설을 갖춘 후 일반과제자로 사업자를 신청하면 허가를 낼 수 있다는 답을 들었다. 이는 대형화와 전문성 있는 당구장들이 들어서게 되는 계기가 됐다.

이 클럽을 운영하면서 유명 외국선수들을 초청, ‘코스모스배 국제오픈 당구대회’를 7년 연속으로 열었다. 이 또한 국내 최초이 사례였다. 클루망 브롬달 사이그너 ‘어린’ 산체스 이상천 고모리 등 전현직 전설들이 이 대회에 다녀갔다.

그러나 이 대회를 통해 기라성같은 국제 캐롬 스타플레이어들조차 경제적으로 좋은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심사숙고 후 선수의 길을 접고 당구관련 수출입사업에 뛰어든다. 그의 나이 32살 때 일이다.

<②편에 계속>

 

[파주=이상연 기자/큐스포츠뉴스 취재부장]

기사제보=sunbisa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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