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들 가운데, 예체능 계열 여러 방면에서 두각을 보이는 인물이 나타나곤 한다. ‘벚꽃엔딩’ 등 수많은 곡을 히트시킨 작곡·작사가 장범준은 애니메이션학과(상명대 08학번) 출신다운 뛰어난 미술실력이 이슈가 된 바 있다.
당구계에 최근 유사한 사례가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2시즌만에 프로당구 3부(챌린지투어)→1부 초고속 승격을 이룬 임완섭(31)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국악에 관심을 보인 그는 웬만한 실력으론 뚫기 어렵다는 한양대에 전액 장학금까지 받으며 국악 전공자로 입학했고, 이어 대학원 과정까지 마친 국악계 인재였다고 한다.
이런 그가 20·30 당구동호회 YB를 결성(2017년)하더니, 코로나19 시기를 거쳐 아예 프로당구선수의 길을 걷는다.
아들 뒷바라지에 여념없던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당구선수 되겠다” 선언하자 참 속상해했다고. 그러나 아들이 프로당구 맨 아랫단계에서 출발한 지 불과 2년만에 가장 높은 1부로의 도약을 이뤄내자 이젠 “아들, 뒤돌려치기 앞돌려치기” 하며 즐겁게 응원을 보낸단다.
지난 2월 28일, 임완섭은 PBA 1부 64강전(시즌 9차투어)을 소화했다. 올시즌 2부(드림투어)에서 뛰며 1부 3·6차전에 이어 와일드카드 선수로 시즌 마지막 1부 정규투어 출전기회를 얻었고, 심지어 128강서 승리(최원준에 승부치기 승)한 것이다.
이어진 64강전은 장남국에 세트스코어 0:3으로 패한 임완섭. 그 직후 들려준 그의 소감에는 차기 시즌에 대한 설렘과 희망으로 충만했다. 다음은 임완섭과의 일문일답이다.
Q. 1부 64강전서 패했는데 소감은.
=이제서야 내가 1부에서 뛰었고, 또 승리까지 했구나 싶었다. 하하. 사실 128강전 승리(최워준에 승부치기 승) 때는 1부에서 뛰고 있다는 생각이 들 새조차 없었다.
Q. 차기시즌 1부투어 승격 확정자로서 ‘예비고사’ 치른 셈인데, 소감은.
=오늘 경기(9차투어 64강) 준비하면서 좀 벅차더라.
PBA 출범(2019년)당시 트라이아웃에 출전하고팠으나 제 본업과 직업 당구선수에 대한 두려움 등 이유로 그 의지를 접어야 했다. 그러나 3부부터 출발, 2부를 거쳐 이제 차기 시즌부터 1부 무대의 일원이 된다. 2·3부에는 훌륭한 실력을 갖췄음에도 1부 무대를 경험못한 선수도 수두룩하다. 그에 비하면 저는 참 운이 좋은 케이스다.
Q. 최근 ‘당구선수 아들을 둔’ 어머니의 페이스북 게시글이 화제가 됐다.
=사실, 어머니는 아들이 당구선수 하겠다고 하자 많이 속상해하셨다. 저희 부모님 세대 대다수에게 당구는 담배연기 자욱한 곳에서 즐기는 불건전한 행위로 인식되고 있잖나.
그러나 제가 YB동호회를 통해 건전한 당구생활을 즐기고 있음을 보여드리는 등 노력하자 마음의 빗장을 서서히 풀어주셨다.
지금은 제 경기가 유튜브로 중계될 때면 화면을 보시며 “옆돌리기 뒤돌리기” 하시더라. 아들 경기를 제대로 보시려고 홀로 당구를 공부하신 것이다. 그 노력에 감사할 따름이다.
Q. 매 경기마다 어머니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승패보다는 아들의 인생을 위한 걱정이셨다. 3부와 2부에서 나름 성적을 낼 때마다 어머니느 “아들, 항상 겸손해야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신경써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럴 때마다 귀담아 듣고 있다. 물론, 승리할 때마다 축하도 크게 해주신다. 하하.
Q. 석사학위까지 취득한 국악 전공자라고.
=그렇다. 초등학교 때부터 국악에 관심 두던 저는 광주예술고를 거쳐, 서울대 한예종과 함께 대한민국 예술계 톱3인 한양대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다. 전공은 관악기인 대금이다. 이 전공으로 한양대에서 석사까지 수료했다.
Q. 국악 경험이 당구에 도움되는 점도 있나.
=분명 있다. 저는 귀가 매우 예민해, 당구에서는 공 치는 소리에 굉장히 집중하는 편이다. 예술하는 사람들은 특정한 감각에 대한 공통분모가 있는듯하다.
Q. 그럼 이제 국악은 접었나.
=포기한 건 아니다. 저는 당구인이자 ‘국악인’이다. 굳이 설명하자면 병행이라고 할까. 음악은 언제든 다시 할 수 있다. 또한 당구는 경쟁하는 예술이지만, 국악은 경쟁하는 예술이 아니다. 그래서 제가 행복을 얻는 수단이기도 하다.
Q. 유튜브에서 닉네임 ‘새앙쥐’로 유명하다. 팬들에게 전할말이 있다면.
=‘재야의 고수’ ‘동호인 최강자 ’등 타이틀로 과대평가 받아온 저다. 그 기대에 못 미치는 실력으로 인해 부담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고대하던 1부에 직행하게 됨으로써 ‘새앙쥐’ 팬들의 기대에도 어느정도 부응한 것 같아 다행이다.
Q. 차기시즌 1부리거로서 각오는.
=아직 보완할 점 투성이다. 세트게임을 많이 안 해본 점도 현재로선 약점일 수 있겠다. 그런 부분을 연습 때 제대로 채워나갈 계획이다. 기대해 주시라. 그리고 그간 제게 응원을 보내준 저희 YB동호회 회원들을 비롯, 수많은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일산=이상연 기자/큐스포츠뉴스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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