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17일. 프로당구 PBA 큐스쿨 1라운드 1일차 경기가 한창인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PBA전용구장에 반가운 얼굴이 등장했다. 현재 장기 미국 체류중인 포켓볼 선수 이강(33)이었다.
잠시 귀국해 친형의 식당(경기 하남, 편백상회) 일을 돕다가, 이날 큐스쿨에 출전한 김정섭(챌린지투어) 응원차 일산에 온 그였다.
경기도 광주 출신인 이강은 20대 초반까지 경기도당구연맹 기대주로서 활약해왔다. 그러던 그가 지난 2014년 10월 돌연 미국행을 선택했다. 국제적인 강호들이 즐비한 판에서 뛰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혈혈단신 태평양을 넘어간 것이다.
그 후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20대였던 그의 나이는 어느덧 30대 초반이 됐다. 그동안 그는 “포켓볼에 관한 시야가 크게 확장됐고, 일자리도 얻고, 영어도 좀 늘었다”며 허허 웃었다.
▲요즘 근황은.
=여전히 미국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2019년까지 연간 5~6개의 큰 대회는 꼭 빠지지 않고 출전했다. 아리조아 라스베가스 오하이오 미시건 위스콘신 지역별 대회와 프레데터 대회, 슈퍼 당구 엑스포까지 뛰면 한 해가 훅 지나가더라. 미국 땅이 워낙 넓어서 이동시간이 어마어마하다.
▲인상깊었던 미국 대회를 꼽는다면.
=미 동부 펜실베니아에서 열린 ‘슈퍼 당구 엑스포’다. 미국 당구 원로인 앨런 홉킨스씨 주최로 열리는 행사다. 박람회 부스와 함께 경기를 위한 테이블이 깔리는데, 무려 460대가 설치돼 장관을 이룬다. 그중 20~30대가 전문선수 대회용, 나머지 수백대의 테이블에선 남녀노소를 위한 오픈대회가 치러지는 데 그 점이 참 인상적이었다. 참가인원은 대략 4000명으로 추정된다.
▲올해 초, ‘슈퍼 당구 엑스포’가 미국서 화제였다고.
=그 대회 성적이 올해부터 WNT(월드나인볼투어) 랭킹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BCA(미국당구협회) 랭킹에만 반영됐다. 이런 점 때문인지 이번 ‘슈퍼 당구 엑스포’에는 미국 활동선수 뿐만 아니라, 그간 출전히 뜸했던 유럽 선수들도 나오더라.
▲2019년부터 프레데터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던데,
=약 5년전부터 미국 대형 당구용품업체인 ‘프레데터’의 직원으로 채용돼 대회장 테이블 위쪽에 조명을 설치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한 대회마다 보통 70-80개를 설치한다. 팀원들과 함께 장비들을 실은 트럭 운전해 그 큰 미국 땅을 횡단-종주한다.
최근에 자넷리 집, 앨리슨 피셔의 집에 가 테이블 조명을 설치해주고 왔다. 프레데터 측에서 이 선수들의 유튜브 방송용을 위한 테이블 조명을 후원해준 것이다.
▲프레데터와의 인연은 어떻게 맺어졌나.
=2019년 초, 프레데터 투어에서 미국 간판선수 중 하나인 타일러 스타일러를 이겼다. 이에 평소 친분있던 프레데터의 CEO 카림 벨라 사장님이 “앞으로 프레데터 대회를 위한 참가비 숙박비 다 지원해주겠다”고 하시며 저를 직원으로 채용해 주셨다.
사실 이는 카림 사장님과 함께 프레데터의 캐롬 관련 사업을 총괄하는 분(아이라 리)이 계셔서 가능했다. 학생 때 가끔 뉴욕 ‘버호벤 오픈’ 등 일정을 소화하러 가며 만났던 분이고, 제 이웃사촌이시기도 하다. 그분이 미국생활 중인 저를 카림 사장님께 소개해줘 면을 틀 수 있고 그 인연으로 프레데터 직원까지 됐다. 참 고마운 분이다.
▲현재 거주지와 생활환경은.
=사는 곳은 미국 뉴욕시 퀸즈다. 대중에게 영화로 잘 알려진 ‘스파이더맨’이 사는 그 지역이다. 4룸 하우스에서 룸메이트들과 함께 지낸다. 퀸즈 일부 지역은 치안에 대한 불안이 높지만, 그쪽을 최대한 피하고 또 무리를 이루어 다니면 돼 큰 걱정거리는 아니다. 힘든 점이라면 렌트비(월세)가 비싸다는 것? 하하. 화장싱 딸인 방은 월 렌트비가 100만원이 넘는다.
▲미국에는 어떻게, 어떤 심정으로 간 것인가.
=군 전역 시점부터 당구선수의 길을 두고 계속 갈지, 멈출지 고민했다. 그러다 포켓볼 저변이 거대하게 형성된 미국행을 염두에 두고 취업 체류 등 각종 비자를 신청해봤다. 그후 그걸 잊고 가구공장에서 일하며 당구는 거의 손도 대지 않고 있었는데, 1년이 지나니 비자가 발급됐다는 것이다. 이에 생각을 굳혔다. 시흥에서 열린 대회를 마지막으로 국내생활을 접고 지난 2014년 10월 13일,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미국행’을 선언한 뒤 부모님의 반응은.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 미쳤다”고 하셨다. 하하. 그런데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잖나. 결국 허락해 주셨다. 요즘은 “정신 차렸구나” 하신다. 당구치며 열심히 일 하는 아들을 보시며 안도하시는 것 같다.
▲타국 정착이 쉽지 않았을텐데.
=정착 초기에는 큰 미국땅을 돌며 공식대회 및 하우스대회 등 나갈 수 있는 대회는 다 출전했다. 그렇게 2~3년이 지나자 생활고가 찾아왔다. 그 후론 당구치는 시간을 줄이고, 생계활동 시간을 대폭 늘렸다. 당구장에서 일하고, 차를 구매해 우버택시 운전하고, 친형의 친구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하는 등 열심히 살았다. 그러다 프레데터 직원이자 후원선수가 된 것이다.
▲최근의 미국생활은 만족스러운지.
=그런 편이다. 저는 공 칠때가 가장 행복하다. 일하며 대회에 꾸준히 출전할 수 있고, 주말에는 동네에서도 당구를 칠 수 있어 만족하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하우스 대회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재야의 고수가 수두룩 하더라. 하하.
▲미국생활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웠다고.
=나는 그동안 참 시야가 좁았다는 생각을 요즘 참 많이 한다. 중2때부터 전문선수 생활을 시작해 포켓볼에 대해 나름 전문가라고 여겨왔는데, 미국에 가보니 내가 알던 포켓볼은 일부에 지나지 않더라. 우물안 개구리였구나 싶다. 조금 거만했했는데, 겸손해졌다.
미국에서는 8-9-10볼에 더해 뱅크풀, 원포켓, 스트레트 풀 등 게임까지 보편화 돼 있었다. ‘같은 테이블에서 전혀 다른 게임을 즐길 수 있구나’란 생각에 기분좋게 흥분이 되더라. 한 번은 켄터키 더비시티 대회에서 뱅크풀 경기를 하는데, 거동조차 힘든 90세 할아버지에게 말도 안되는 스코어로 졌다. 충격적이었다. 하하.
이런 내게 당구는 아직 미지의 영역이 많은 존재다. 아이라 님과의 인연으로 캐롬까지 치다보니 그런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그래서 즐겁다. 앞으로도 미지의 영역을 알아가며 배울 것들이 많아 기대된다.
[일산=이상연 기자/큐스포츠뉴스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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