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신선한 뉴페이스들의 등장은 스포츠의 재미를 배가시켜 주곤 한다. 이에 큐스포츠뉴스가 ‘내일의 스타’ 코너를 마련, 향후 활약이 기대되는 당구계의 원석들을 발굴·조명한다. 다섯 번째 주인공은 국내여자3쿠션 랭킹 4위 박세정이다.
“쓰라린 패배를 통해 배운다”는 스포츠의 격언이 있다. 이를, 올해 20살인 성인부 데뷔 2년차 여자3쿠션선수 박세정(경북당구연맹,숭실대2)이 그야말로 피부로 느끼고 있다.
박세정은 약 2주전 ‘제1회 안동하회탈배 전국3쿠션 당구대회’ 4강서 ‘18세 여고생’ 백가인(천안 신당고3)에게 48이닝의 장기혈투 끝 22:25로 발목을 잡혔다.
이후 개인통산 첫 전국대회 결승진출이 좌절되며 생긴 쓰라린 감정이 후유증이 돼 한동안 그를 괴롭혔다. 최근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5월말)에서 밝힌 그의 심정이었다. 박세정의 전국대회 최고성적은 4강(총 3회)이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밝았다. “안동대회의 여파가 이제 거의 다 사라졌다”는 것. 나아가 다수의 보완점을 발견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으며, 요즘엔 “부족한 부분을 메우는 강화하는 데에만 온 정신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딸을 위해 당구장까지 차려 지원해주는 부모님, 자신을 제자로 받아준 뒤 지금도 뜨겁게 응원해준다는 스승 이유주(LPBA 선수) 등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우승의 각오를 되새겼다. 나긋나긋한 말투 속에서 우승을 향한 강한 집념이 느껴졌다.
“(당구를)때려치우고 싶을 때도 적지 않지만, 그럴 수 없다. 나는 당구에 중독된 것 같다”는 전문선수 데뷔 4년차 박세정의 속 깊은 이야기를 일문일답으로 펼쳐본다.
▲요즘(5월 말) 어떻게 지내고 있나.
=약 4년간 해온 일상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오전에 학교(숭실대, 스포츠학부)에 등교한 뒤, 오후 3시쯤 하교해 훈련장에 가 자정까지 연습에 매진하는 일상의 반복이다. 최근엔 이 스케줄의 마지막에 홈 트레이닝 시간을 추가해 열심히 운동 중이다. 부족한 체력을 높이고, 바쁜 일상을 버텨내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개인 연습장이 부모님이 운영하는 클럽이라고.
=그렇다. 서울 광진구의 ‘블루닷빌리어즈’다. 약 2년 전 오픈한 테이블 12대의 대대전용 구장이다.
사실 부모님의 꿈 중 하나가 당구장 오픈이셨다고 한다. 젊었을 적에 당구에 흠뻑 빠졌던 두 분(박성진-이유연)이시다. 우리 클럽도 당구선수인 딸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자 차리신 것이다. (박정현은 1남2녀의 차녀다. 그중 미용사인 언니를 제외한 박세정과 막내인 남동생은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각각 당구(박세정)와 야구(남동생) 종목 선수의 길을 걷고 있다.)
▲당구는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부모님, 특히 아버지가 적극적으로 권하셨다. 중3에서 고1로 넘어갈 무렵(2019~20년), 아버지가 큐, 큐가방, 장갑, 초크 등 용품들을 잔뜩 사오셔서 내게 “대대구장 한 번 가볼래?”라고 말씀하셔서 가벼운 마음으로 동네 당구장에 가 처음 큐를 잡고 공을 쳐봤다. 그 순간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탕’하고 큐를 통해 전달되는 타격감이 너무나도 짜릿했다.
당구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도 그때 바뀌게 됐다. 대대전용 구장은 ‘뿌연 담배연기’가 없이 산뜻했다. 당시 막 출범한 프로당구 PBA의 세련되고 화려한 이미지도 제 생각을 바꾸는 데 한몫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고1(2020년) 8월에 당구 선생님을 처음 만나게 됐다. 현역 LPBA 선수인 (이)유주 쌤이다.
▲이유주 선수는 어떤 선생님인가.
=제가 선생님의 첫 제자였다. 그래서 그런지 저를 위해 당구 이론을 공부해오시는 등 참 열성적으로 가르쳐 주셨다. 감사하다. 또한 자상하게 저를 대해주셨다. 거의 엄마처럼. 하하. 지금은 레슨을 받지 않고 혼자 연습하고 있지만, 선생님과의 인연은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한 달 전에도 선생님이 계신 구장에 가 인사드리고 지도를 받기도 했다.
그렇게 선생님께 공을 배우면서 선수등록 한 뒤, 고2(2021년) 3월에 ‘국토정중앙배 전국당구선수권’을 통해 학생 선수로서 전국규모 대회를 처음 밟게 됐다. 그리고 약 5개월 뒤인 ‘경남 고성군수배 전국당구선수권'(21년 8월)에서 생애 첫 전국대회 정상을 밟는 기쁨을 맛봤다.
▲전국대회 첫 우승 당시 심정과 부모님-선생님의 반응은.
=일단 저는 어안이 벙벙했다. 허채원(당시 창문여고, 현 한체대) 선수와의 결승서 6이닝까지 0:6으로 끌려가다가 24이닝째에 12:11로 역전한 뒤 14:14로 동률이던 29이닝서 먼저 매치포인트를 쳐 극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그 경기를 부모님은 차 안에서 스코어로만 보셨다. 코로나 여파로 관전이 제한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딸의 첫 전국대회 우승 소식을 알게된 부모님은 곧바로 꽃과 케이크를 사오시며 대회 현장에서 저를 축하해주셨다. 선수인 저를 참 자랑스러워 하시는 할머니도 전화로 기쁨을 함께 나누셨다. 선생님(이유주 선수)은 제게 책과 편지를 주시며 축하해주셨다. 거센 감동이 몰려 들어왔던 기억들이다.
▲작년부터 성인부(일반부)에 출전, 최근까지 동메달만 3번 따냈다. 학생부 때 경험한 우승의 기쁨을 또 맛보고 싶을텐데.
=당연하다. 선수니까. 약 2주전 출전한 안동대회를 포함, 성인부 선수로 뛴 1년 5개월여 간 전국대회 4강만 3번 올랐다. 나쁘지 않은 성적이지만 결코 만족할 수 없다. 학생부 때부터 대회에서 자주 맞붙던 (박)정현이 등이 우승하는 모습을 보면 속상하기도 하다. 저도 시상대의 가장 높은 곳을 밟고 싶다.
▲안동대회 후 깨달은 바도 있다고.
=4강에서 탈락한 후유증으로 한동안 참 힘들었지만, 그 대회를 통해 내가 추구해야 할 경기운영, 멘탈관리법 등을 정립할 수 있었다. 그 전까지 당구에 관한 걱정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슬럼프에 빠졌었다. 대대 점수를 27점서 28점으로 올리고 나서 당구가 내 뜻대로 되지 않더라. 속상해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러나 안동대회 후 정신을 가다듬었고, 현재는 내 보완점을 개선하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다.
4년 조금 넘는 선수생활을 두고 누가 나에게 “잘 해왔나?”라고 묻는다면 “아니다”고 답할 듯하다. 더 노력해야 한다.
▲앞으로 어떤 선수가 되고 싶나.
=실력을 더 쌓아서 남자선수에 꿀리지 않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자 당구선수가 되고 싶다.
▲롤모델은.
=존경하는 선수는 (이)유주 쌤이다. 이미래 선수에겐 조언을 듣고 싶다. 그 많은 영광을 차지하신 분의 연습방법 등을 들어보고 싶다. 같은 고리나 후원선수라 회식 때 함께 얘기한 적도 있지만, 쑥스러움 많은 성격 탓에 선수로서 궁금한 점들은 아직 물어보지 못했다.
▲마지막 질문이다. 박세정에게 당구란.
=중독성 강한 존재다. 하하. 때려 치고 싶은 순간도 많지만, 그럼에도 놓을 수 없다. (당구에)중독된 듯 하다. 그만큼 저는 당구에 진심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이런 마음을 부모님, 유주 쌤, 저희 구장 손님들 등 저를 응원해 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밝히면서 ‘앞으로 더 성장하겠다’는 각오도 전하고 싶다. 올해 안으로 꼭 전국대회 정상을 밟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이상연 기자/큐스포츠뉴스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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