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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인했던 23년의 포켓볼 기술 (봉인)해제중”… V9! ‘프로당구 GOAT’ 향해가는 김가영 [인터뷰]

 

 

GOAT(Greatest Of All Time). 특정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선수를 의미하는 단어다. 농구황제로 통하는 마이클 조던, 축구계의 메시 등에 해당 칭호가 따른다.

프로당구에서는 김가영이 ‘GOAT’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김가영은 최근 ‘크라운해태 한가위’ 투어서 자신의 9번째 우승을 달성, 쿠드롱(8승)을 제치고 PBA-LPBA 통틀어 역대 최다 우승자로 우뚝 섰다. 게다가 프로당구 최초의 ‘10승’ 대업을 넘봐도 될 정도로 최근 페이스가 좋다. 올 2024-25시즌 1~2차전 모두 64강 탈락하며 주춤했으나, 이어진 3~4차전 모두 보란 듯이 정상을 꿰찼다. 앞으로 정규투어 5개와 왕중왕전까지 총 6개 대회가 더 남았다. 10승이 시즌 내로 채워질지도 모를 일이다.

이처럼 프로당구 판의 독보적인 존재가 돼가고 있는 김가영이다. 그러나 당사자는 “아직 멀었다”며 손사레친다. PBA전용구장 인근 그의 개인연습실서 진행된 인터뷰에서다.

프로데뷔 후 평지가 아닌 험지를 걸어온 김가영이다. 20년 넘게 해온 익숙했던 것(포켓볼)을 버리고, 단기속성으로 덜 익숙한 것(3쿠션)을 체득하면서, 동시에 대회까지 소화해야만 했던 그다. 인고의 시간이었다. 때론 막막했고, 때론 답답했다. 그렇게 피·땀·눈물을 흘리면서 새로운 것(3쿠션)을 점차 익숙한 것으로 바꿔왔다.

그 과정서 느꼈던 감정들을 김가영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세히 들려줬다. 3쿠션 적응기를 지나, 기술 정립기를 맞고 있었고, 현재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한동안 봉인해둔 포켓볼 기술을 조금씩 꺼내 실전에서 활용중이라고 했다.

 

최근 ‘크라운해태 한가위’ 투어에서 우승, 프로당구 PBA-LPBA 역사 최다인 9승 대업을 달성한 김가영. 그 과정까지 달라오며 흘린 피 땀 눈물에 관한 이야기를 PBA전용구장 인근 김가영의 개인연습실에서 그와 만나 직접 들어봤다.

 

▲프로 데뷔 후 3번째 시즌까지 3쿠션 적응기였다고. 

=’나는 초보다’란 마음을 먹고 3쿠션 관련된 모든 정보들을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빨아들이던 시기였다. 3쿠션-포켓볼, 두 종목의 적절한 교합점을 알려줄 이가 없잖나. 그 교합점을 스스로 찾아야 하는데 피치못할 사정으로 당장 LPBA 선수로 뛰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돼 그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닥치는대로 배우고 또 배워 (3쿠션 지식들을)머리속에 주입시켰다.

(지난 2019년 프로당구 출범 당시 초청선수로 참가한 김가영은 대한당구연맹으로부터 3년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고, 이에 어쩔 수 없이 프로선수로 전향하기에 이른다. )

 

▲3쿠션을 체득하는 과정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굳게 믿고 있던 내 당구에 대한 기준이 흔들리는 것이다. 1997년부터 2019년까지 23년간 포켓볼을 치며 쌓인 나만의 데이터가 있다. 그것을 토대로 아카데미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헌데 그 기준이 흔들려 버리니 막막했다.

또 그 상태로 실전에 나가니 모르는 길이 너무 많더라. 답답했다. 어떤 샷을 쳐야 할지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다가 시간에 쫓기듯 샷 하고 나오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럼에도 3시즌동안 우승컵 3개를 획득했다. 

=위에 언급한 이유로, 내겐 현실과 내 심정과의 괴리감이 진하게 느껴졌던 시기다. 포켓볼 엘리트 선수의 길을 걸으며 쌓아온 당구지식, 누굴 가르쳐도 될 그 지식들이 있으나, 현역 3쿠션 선수인 내 테크닉 등은 소위 조무래기 수준인 댱시의 현실이 참 힘들더라. 이러한 “잡념들을 가지면 안 된다”고 제자들에게 항상 강조해왔는데, 그걸 내가 하고 있으니 창피하기도 했다.

남들이 두께감 좋다고 나를 칭찬하더라. 그러나 3쿠션에서 활용되는 기술들이 간절했던 당시의 나에겐 그 의견(대중의 칭찬)들이 칭찬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런 현실을 도피하려고 하진 않았다. 친한 선후배들에게 속내를 터놓기도 했다. 그렇게 좋지 않은 부분을 치료해야지, 자꾸 숨기고 덮어주면 치유가 되지 않잖나.

 

▲김가영이 만족할만한 좋은 선수란. 

=실전에서 본인 실력의 80~90%를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포켓볼 선수로 뛰면서 대게 그 정도를 유지했고 100% 또는 120%까지 발휘한 적도 있다.

그러나 프로당구 선수가 된 직후에는 실력의 10%도 못 보여주는 경우가 생기더라. 잘 될때는 90%가 되기도 하고. 즉 경기력의 기복이 심해진 것이다. 그 기복을 점차 줄여나가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내 실력의 60~110%를 실전에서 발휘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현재 내게 보내주시는 칭송들은 아직 과대평가라고 생각한다.

 

▲그럼 현재 3쿠션 적응기는 지났다고 볼 수 있는가.      

=지금은 그간 흡득한 기술(샷) 가운데 성공확률 높은 것들을 추리는 중이다. 이렇게 덜어낸 것도 있고, 또 강화시킨 것도 있다.

 

“요즘 포켓볼 선수에겐 기본중의 기본인 끌어치기를 종종 구사하고 있어요.”

 

▲’덜어낸 것’과 ‘강화한 것’을 자세히 설명한다면. 

=덜어낸 것은 회전이다. 무조건 맥시멈 회전을 주로 공을 쳐야 하는 줄 알았다. 3쿠션 배우던 초기에 “회전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기도 했다. 포켓볼을 무회전 샷이 많으니. 그러나 이제 회전을 조금 빼고 쳐야 유리한 샷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강화시킨 것은 끌어치기다. 예전에는 3쿠션 선수들이 끌어치기를 잘 구사하지 않아 나도 자제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혹자들은 그것(끌어치기)의 성공확률이 낮다고도 한다. 그래서 나는 내 눈에 끌어치기 길이 먼저 보여도 나는 다른 공을 치려고 했었고, 샷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곤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왜?’란 의문이 들었다. 아시다시피 포켓볼 선수에게 끌어치기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난 그게 편하다. 그래서 최근엔 종종 구사하고 있다. 어찌보면, 그간 자의반 타의반으로 봉인돼 있던 포켓볼 지식이 해제된 셈이다. 부디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다.

 

▲통산 우승횟수가 무려 9번에 달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우승을 꼽는다면. 

=모든 우승이 다 드라마틱했다.

현 시점에서는 가장 최근 우승인 ‘한가위 투어’가 먼저 떠오른다. 상대였던 (한)지은의 컨디션이 좋아보였다. 나는 꾸역꾸역 결승까지 올라왔던 상황이었다.  나는 어떤 경기든 ‘내가 해야 할 것만 하자’는 마음으로 한 큐 한 큐에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못하고 그냥 툭 치고 나오면 후회하게 된다. 지은이와의 결승전도 그런 자세로, 특히 승부처와 고비 때 그렇게 임했다.

 

▲한지은을 비롯, 성장증인 여러 후배에게 해줄 조언이 있다면. 

=’자신을 잘 파악하라’고 말하고 싶다. 일반적인 수면시간이 8시간 정도 잖나. 당구에 쏟을 시간은 16시간 남짓인 셈이다. 이를 효율적으로 쓰려면 나를 잘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예시로 내가 나를 분석해보겠다. 나는 나이 마흔이 넘었고, 포켓볼 베이스의, 신장이 170cm인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또 어울려 공치는 것보다 혼자 연구하는 걸 좋아한다. 그에 맞는 훈련루틴과 더불어 이런 연습실(경기 일산서구 소재 개인연습실)을 차린 것이다. (김가영은 1년 전부터 PBA전용구장에 거처와 연습장을 옮겨 생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연습장-대회장 사이의 동선을 줄이려고 전용구장 코앞에 집-연습실 마련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자기분석은 사람마다 제각각일 것이다. 만약 키가 작아 샷 파워가 부족하다면 근력 운동을 더 해야 할 것이고, 기본기가 부족하다면 기본기를 더 쌓아야 할 것이다. 관련해서, 여자선수들은 남자선수들이 해주는 테크닉에 대한 조언을 듣는 건 좋지만 무조건 따라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긴 시즌을 나는데 중요한 체력관리는 특히 언제 집중적으로 하나. 

=비시즌기 때 많이 한다. 웨이트와 더불어 식단조절까지 해가며 한다. 시즌을 나기 위한 체력을 미리 비축해 놓는 셈이다. 물론 시즌 들어서도 틈날 때마다 한다. 이런 체력단련은 중학생 때부터 해온 것이다. 참, 이 인터뷰 끝나면 바로 웨이트 장으로 가야한다. 하하.

 

김가영의 어머니 집에서 푸짐한 상을 대접받은 초클루의 아내 에멜(사진). 사진제공=김가영.

 

▲분위기를 잠시 환기시켜 보겠다. 현 팀원(하나카드 하나페이)들과 가족처럼 친해보인다. 정서적으로 큰 힘이 되고 있다고. 

=이번 ‘한가위 투어’ 우승 때 (김)병호 형님이 명절임에도 불구하고 나와 초클루(한가위 투어 PBA 결승진출) 때문에 끝까지 남아서 응원해줬다. 너무나도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초클루에게 참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한가위 투어)결승전 전날 연습을 봐 달라는 내 요청에 “2시간도 괜찮다”며 여러 도움을 줬다. 다음날 오전에 결승전을 앞둔 선수가 말이다. 초클루의 아내인 에멜과도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최근에 에멜과 함께 우리 어머니 집에 갔는데, 어머니가 손님 오셨다고 상다리가 부러지게 상을 차려주시더라. 또 귀가하는 에멜에게 손에 음식을 한 보따리 쥐어 주셨는데, 에멜이 그릇을 되돌려주면서 음식을 담아 줬다.

 

▲마지막 질문이다. 좌우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글의 앞에는 대게 부정적인 내용이 올 것이지만, 글 뒤쪽은 긍정적인 내용으로 마무리 될 것이다. 테이블 상태가 좋지 않더라도, 몸이 좋지 않더라도, 관중의 방해를 받더라도, 등의 여러 이유에도 불구하고 나는 잘 해낼 것이다.  왜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김가영이니까.

 

[일산=이상연 기자/큐스포츠뉴스 취재부장]

기사제보=sunbisa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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