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없는데, 기분좋은 정신 없음 이네요. 하하”
수화기 넘어 들리는 목소리로 짐작컨데 그는 다소 지친듯 했다. 온 공력을 준결승과 결승전에 연달아 털어넣은 직후라서 그럴지도.
그러나 톤은 매우 밝았다. “우승? 당연히 좋죠”라는 소감으로 그와의 인터뷰가 본격 시작됐다.
조명우(서울시청,실크로드시앤티)가 29일 밤 ‘제76회 세계3쿠션선수권대회’ 결승서 승리, 한국인 2호 세계3쿠션권자로 기록됐다.
이를 저지하고 고국 베트남의 ‘대회 2연패’를 노리던 쩐딴룩의 의지는 조명우가 결승서 단 20이닝만에 50:23으로 잠재워버렸다.
이를 막 해내고 나온 조명우가 밝힌 소감이 바로 서두의 멘트다.
“결승전이 끝나자마자 온 몸의 긴장이 풀렸어요. 한국인 2호 세계선수권 우승자 된 소감이요? 사실 결승전을 앞두고는 그런 생각들(8년만의 결승진출, 10년만의 정상탈환 등)을 덜어내려고 했어요. 경기에만 집중하기 위해서요. 그리고 결승전서 제가 가진 생각의 총량을 다 썼는지, 또 집중을 많이 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지금 제 머릿속은 텅 빈 듯 합니다.(웃음)”
이처럼 온 몸을 던져 대회를 소화해낸 조명우는 그 때문인지, 대회 내내 컨디션이 좋았다. 총 7경기의 토탈 애버리지가 2.171에 달한다.
특별한 컨디션 유지를 한 것일까. 아니었다. 오히려 조명우는 자신의 평소 루틴을 유지하는 데 전념했다고 했다. 그것이 뜻대로 이뤄졌으며, 또 좋은 결과도 따라왔다.
“결승전을 앞두고 ‘잘 칠 것 같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준결승전 직전까지 2점대 애버리지를 쭉 유지해왔고, 준결승 상대인 멕스는 저보다 더 좋은 컨디션(당시 그랜드 애버 2.705)이었는데 그와의 경기도 2점대 애버를 치며 이겼잖아요. 다만, 의지만으로 경기가 잘 풀리진 않으니 결승전에선 저만의 마인드 콘트롤을 했죠.”
결승전 조명우의 마인드 콘트롤은 “이 경기는 예선전이다”는 일종의 자기 최면이었다. 그 덕분인지 조명우는 좋은 페이스를 유지했고, 상대인 쩐딴룩의 부진까지 겹쳐 대망의 결승전 승리를 다소 여유 있게 쟁취할 수 있었다.
‘자기최면’과 관련된 속마음도 털어놨다.
“사실 4강전 때부터 자꾸 작년 생각이 났어요. 동메달, 좋은 성적이지만 선수로서 아쉬운 게 사실이었죠. 다행히 이번엔 그보다 더 나은 성적(은메달)을 확보했는데, 막상 결승에 오르고 나니 마지막 경기에서 지면 아쉬움이 더 클 것 같더라고요. 그 때문에 생긴 부담감을 극복하려고 결승전서 계속 “예선전이다”고 되뇌인 것입니다.”
이어 이런 과정을 그의 곁에서 꼼꼼하게 도와준 이장희 감독을 비롯한 한국 선수단을 향해 고마움을 전했다.
“(우승은)저 혼자 한 게 절대 아닙니다. 숱한 국제대회를 함께한 이장희 감독인은 선수들이 불편한 점 하나 없도록 잘 이끌어 주세요. 또 최영서 (당구연맹)차장님은 편의부터 선수보호까지 세심하게 신경써 주셨어요.”
한편, 이번 조명우의 영광에 크게 기뻐했을 부친(조지언씨)의 반응이 궁금했다. 그러나 인터뷰 당시 부자는 아직 전화통화를 나누지 못한 상태였다.
“시상식 직후 여자친구와 한 10초 통화했나? 아버지와는 아직 못했어요. 그리고 제 휴대전화에 엄청난 양의 축하 메시지가 도착해 있는데, 그 안에 아버지의 말도 있어요. 내용이요? 항상 그렇듯 저를 응원해주시고 자존감을 높여주시는 말들이죠. 추측컨데, 아마도 아버지는 울고 계시지 않을까 싶어요. 월드컵대회 첫 우승(22년 샤름엘셰이크) 때도 우셨거든요.”
이 멘트 후 조명우는 한국의 당구팬, 그의 후원사 등에 대한 감사함과 추후 행보에 대한 각오를 전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감사한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서울시청(소속팀) 실크로드시앤티 허리우드 띠오리(후원사) 등에서 저를 후원해주셔서 편하게 당구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오늘의 좋은 결과를 낳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국 당구팬분들에겐… 사실 올해 3월 세계팀3쿠션선수권 부진(8강탈락)이 아직 제 머릿속에 남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믿고 응원해주신 팬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 좋은 경기력 보여드리겠습니다.”
[이상연 기자/큐스포츠뉴스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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