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탕당구 이완수의 포켓볼 프리즘 제18화
대서양과 멕시코만에 접한 바다인 카리브해. 이곳 북동부에 위치하고 있는 미국령 영토인 섬. 푸에르토리코다. 실직적인 국가원수는 미 대통령이지만, 실 통치는 행정부수장인 지사가 맡고 있다. 플라맹고 해변 등의 관광명소로도 유명한 이 섬에서는 해마다 여러 대회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며 포켓볼 축제의 장이 마련된다.
올해에는 지역명을 딴 ‘푸에리토리코 오픈’부터 ‘챌린지오프챔피언스’ ‘믹스더블’, 그리고 ‘세계여자10볼선수권대회’이 펼쳐졌다.
그중 WPA(세계포켓볼협회) 주최 ‘세계여자10볼선수권대회’는 각국의 포켓볼 국가대표가 대거 출전해 자웅을 겨뤄 주목됐다. 올해에는 총 22개국 선수(시드 48명)가 고국의 명예를 걸고 싸웠으며, 한국에서는 김웅대 감독과 함께 서서아 선수, 임윤미 선수가 태극마크를 달고 푸에르토리코 행에 나섰다.
대회는 지난 11월 11일부터 출발, 16일까지 치러졌다. 예선전은 라운드별 경기(3판2선승)로, 본선은 예선통과자 16명이 넉다운 세트제(5판3선승)로 겨뤄 최종승자까지 가려졌다.
익히 알려진대로 이 과정에서 우리 서서아 선수는 통한의 결승전 패배를 당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대단하며 값지다. 그 과정을 당구 선수 출신이자 현 감독인 필자의 눈으로 훑어본다.
서서아 선수는 예선 라운드 첫 경기서 캐나다의 베로니카 메날드 선수를 세트스코어 2:0으로 꺾으며 순탄하게 출발했다. 이어 승자조 2라운드에 올라 영국을 대표하는 선수이자, 포켓볼 역사의 레전드로 불리는 켈리 피셔에 2:1로 신승을 거두며 본선 16강에 안착했다,
임윤미 선수는 대회 첫 경기에서 미국의 BENOIT Ashley 선수와 맞붙어 1:2로 져 아쉽게 패자조로 향했다. 이어 대만의 WANG Wan-ring 선수와 패자조 1경기를 치러 선전했으나, 1:2로 고배를 들며 이번 대회를 마감했다.
이제 서서아 선수만 남았다. 16강에서 맞붙은 선수는 일본을 대표하는 포켓볼 스타, 가와하라 치히로 선수였다. 이렇게 성사된 한일전에서 서서아는 3:0 완승을 거둔다. 8강전은 미국의 신성 MAST sofia 선수와 대결이었다. 이 경기 또한 3:0으로 완승하며 4강에 안착한다.
서서아 선수의 4강 상대는 필리핀의 체스카 센테노였다. 16강전에서 고국의 기라성과도 같은 선배인 루빌렌 아밋을 격파하고 승승장구하며 준결승에 올라 한국 1위 선수(서서아)와 만난 것이다.
백중세 또는 서서아의 근소 열세가 예상됐으나, 서서아는 이 예상을 3:1 승리로 뒤집어버리며 결승에 진출한다.
이에 필자는 지난 2012년 김가영 선수 이후 무려 12년만의 우리나라 챔피언 탄생이 기대돼 흥분감이 고조됐다. 또 선수시절 경험에 비춰, 결승전을 치루는 서서아 선수의 마음을 생각해봤다. ‘챔피언 임박’에 대한 설렘과 ‘혹시라도 진다면’이란 긴장감이 공존했으리라.
이런 서서아 선수의 결승전 상대는 4강전에서 강호 자스민 오스천(오스트리아)를 세트스코어 3:1로 따돌리고 올라온 러시아의 떠오르는 샛별 TKACH Kristina 선수였다. 이미 세계선수권대회 4강전을 두 차례나 올라섰던 저력 있는 선수다.
드디어 결승전이 시작됐다. 누구든 승리하면 첫 세계타이틀을 따내는 긴장되는 상황. 서서아선수가 첫 세트를 따내며 안정적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두 번째 세트에서 10볼 포팅을 실수하며 세트를 뺏겨 평행선을 유지했다. 3세트는 서서아의 승. 4세트는 TKACH Kristina 선수의 승.
이제 마지막 한 세트를 따내는 선수가 트로피를 들어 올릴 자격을 갖게 된다. 헌데 TKACH Kristina 선수가 마지막 세트에서 초인적인 정신력을 발휘, 어려운 공을 다 풀어내는 것이었다. 그 기세에 서서아 선수는 해당 세트를 내줘 2:3으로 패배했다. 서서아 선수는 물론 한국에 무려 12년만에 가까이 다가왔던 세계선수권 우승 트로피가 끝내 상대에게 넘어갔다.
필자는 너무 아쉬웠다. 할말을 잃고 잠시 멍을 때리기도 했다. 하지만 어찌하랴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것을.
그러나 필자는 곧 미소를 지었다. 기대주에서 탈피, 어느덧 한국을 대표하는 ‘포켓퀸’으로서의 위상을 탄탄하게 갖춰가고 있는 서서아 선수다. 그 가파른 상승세를 지켜보노라면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다.
값진 준우승을 가져온 서서아 선수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함께 참가한 임윤미 선수도 고생하셨다.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며 누구보다 고생하셨을 김웅대 감독님께도 정말 고생많으셧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서서아로 인해, 대한민국 포켓볼은 맑음이다. 더 푸르고 맑은 대한민국 포켓볼 위상을 위해 당구계통 관계자 분들은 꼭 관심을 가져달라 부탁드리고 싶다.
[글=이완수 인천광역시체육회 당구팀 감독]
사진=’프레데터 프로 빌리아드 시리즈’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