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이길남 양경현 최유경 박은주 등 한국심판 4인이 최근 아일랜드 카로우에서 열린 ‘2025 아이리쉬 오픈’(Irish Open)과 ‘2025 월드매치플레이챔피언십’(World MatchPlay Championship) 등 잉글리시 빌리어드 대회에 투입돼 심판직을 수행, 현지에서 관계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특히, 스누커-잉빌 종목 불모지인 한국의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심판직을 맡은 최유경 박은주 심판에 관한 관심이 대단했다고 한다. 그 현지의 이야기를 최유경 심판의 글로 총 3편에 걸쳐 전달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인천공항을 나설 때가 엊그제 같은데, 모든 수행을 끝나고 와서 일기를 쓰듯 지나간 10일을 회상해본다. 시작은 정말 미약했지만 이렇게 재미난 10일을 만들다니 실로 모든 분께 고마울 따름이다. (고마운 마음과 그에 관한 후기들은 시리즈 마지막 ‘에필로그’ 편에서 다룰 예정)
필자(최유경)를 비롯해 대한당구연맹 심판위원회 이길남 위원장과 양경현 박은주 심판 등 4인이 지난 2일, 무려 20시간의 긴 비행 끝에 아일랜드 칼로우에 도착했다. 잉글리시 빌리어드 국제대회 중 레벨3에 해당하는 ‘아이리쉬 오픈’(4월 2~4일), 가장 권위있는 대회중 하나인 레벨6의 ‘월드매치플레이챔피언십’(4월 5~11일)에서 심판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다.

영국살이를 해본 나였지만, 영국과 지리적으로는 가까우면서도 문화적-역사적으로는 먼 아일랜드라는 나라는 내게 참 낯설게 느껴졌다. 대신 또 다른 매력을 풍겨내는 나라였다.
이런 감상에 이어, 곧 ‘2025 Irish Open'(아이리쉬 오픈) 첫날(2일) 일정에 나섰다. 이번 아일랜드 잉글리시 빌리어드 대회 일정의 오프닝 격 대회였다. 그것을 위해 정복을 입는 순간, 나는 한국을 대표하는 레프리가 됐다. 그것도 여자 레프리다.
한국에서는 협찬으로 받는 티셔츠를 입어야 하므로, 정복 착용은 처음이었다. 넥타이를 매는 순간 숨이 턱 막혀 왔지만 티셔츠에서는 발견하지 못하는 예의가 생겼고, 해당 스포츠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이에 비로소 ‘정말 내가 아일랜드에 왔구나’ 등의 생각이 들었다. 이어 ‘멋진 10일을 만들자’라는 다짐을 한다. 덧붙여, 한국도 스누커, 잉글리시빌리어드 만큼은 정복을 착용했으면 하는 바람 또한 생겨났다. (필자 주=협찬은 팔에 붙여 드릴게요)
정복을 착용하고 각오를 단단히 다지고 나선 첫날 일정이었으나, 참 힘든 하루였다. 예선에서는 60분 소요되는 경기가 하루 4턴이상 돌아가는 강행군이 펼쳐졌다. 더욱이, 영어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했으며, 선수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을 알아차려야 해 업무 수행 내내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심판 업무와 관련해, 국내 스누커와 잉글리시빌리어드 경기에서는 주심과 부심 2인이 임무를 분담해 심판을 본다. 캐롬종목에 비해 스코어 정산이나 복잡한 룰이 많아서다. 잉글리시빌리어드의 경우 10헤저드와 스코어 등은 부심이 체크하고, 나머지는 주심이 맡는 식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했다. 그 와중에 기록지에 한큐에 50점 이상 친 것도 다 적어야 했다. (잉글리시 빌리어드에 대한 설명은 필요하면 다음에 또 쓰도록 하자)
따라서 이번 대회 경기 중에서는 심판에게 재빠른 상황 판단이 요구됐다. 이에 나는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 없이 첫 턴을 넘겼다. 이어 턴이 바뀔 경우 테이블 이동도 단 15분만에 끝나버리는 등 눈코뜰 새 없이 바빴다. 그럼에도 제정신을 붙잡아 두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렇게 혀를 내두를 일정으로 하루를 보내고 맞은 이튿날, 주최측에서 나를 방송테이블 경기 심판으로 배정해 줬다. 심장이 두근댔다. 한국 여자심판 최초의 사건이기에 ‘가문의 영광’과도 같았으나, 그 책임이 막중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인 특유의 도전정신에 근거해 속으로 ‘나는 할 수 있다’를 수없이 외쳤고, 마커로 이길남 심판위원장님이 쉬지도 않으시고 도와주셨다. 정신없던 당시 나에게 이 위원장님은 구세주와도 같았다.
인상적인었던 점. 예선 60분, 본선 90분 시간제로 펼쳐져 호흡이 빨랐던 경기 와중에도 친절함과 여유를 잃지 않던 선수들의 태도였다.
대회장에서 나와 만난 한 선수는 “Jenny(필자의 영어이름), 긴장하지마 너는 너무 훌륭한 레프리야. 네가 긴장하고 있으면 우리들도 힘드니 같이 인조이 하자”고 힘을 북돋아 줬다.
레벨3 대회인 Irish Open에는 나이 많은 동네 어르신도 오신다. 최고령은 82세 할아버지셨는데, 170점을 넘게 치신다. 정말 대단했다.
마지막 3일차에는 대회 세미 파이널(준결승)과 파이널(결승전)이 있었다. 4강 한 경기에 주심으로 우리 이길남 심판위원장, 부심으로 양경현 심판이 나섰는데, 부담감을 떨쳐내고 모두 자신의 임무를 훌륭히 소화해냈다.
그 가운데 우리 심판진이 투입된 테이블에서는 한 큐에 600점 이상을 쳐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를 양경현 심판이 리모컨을 작동시켜 전달했다. 그 전날인 대회 이틀차에는 박은주 심판이 참 친절했던 피터 아저씨(Peter Gilchrist)의 “포 헌드레드”(400점 이상 득점)를 알렸고, 다른 테이블에서는 박수가 터져나온 바 있다.
모두 힘든 와중에 서로 도와주며 항상 제일 일찍 경기장에 도착해 모든 기계와 테이블을 체크하는 등 부지런했던 한국심판들이었다.
대회 파이널에서는 David Causier 대 ‘친절한’ Peter Gilchrist 간의 대결. 멋진 90분의 경기 끝에, David Causier가 677:315로 이기며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샤이한 데이비드(David), 친절한 피터(Peter) 아저씨 모두 대단했고, 수고하셨다고 말하고 싶다.

여담으로 우승자인 데이비드는 현역 딜리버리 드라이버(물류배송 기사)로 일하며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이곳 선수들 대부분이 체육선생님, 그래픽 디자이너, 공항경찰 등 다른 직종에 종사중이었다.
‘도대체 연습은 언제 하냐’고 그들에게 묻자 “일주일에 3~4일, 퇴근 후 연습한다”면서 “우리는 그저 즐기는 거야(Just enjoying)”라고 답한다. 열정을 갖고 즐기기 때문일까, 그들의 실력은 대단해 보였다.
이를 3일차 일정의 피날레를 맞으며, 내 정신을 ‘쏘옥’ 뺀 개인통산 첫 ‘아이리쉬 오픈’ 심판기가 막을 내렸다. ‘해냈다’는 뿌듯함과 동시에 ‘첫 일정이 끝났다’는 안도감도 들었다.
한국 심판 그것도 여자 심판이 처음으로 해외 경기에 투입돼 심판업무를 수행하다니. 매우 자랑 스럽고 기뻤다. 심지어 방송 테이블에서 섰다. 믿고 맡겨준 대회 운영진에게 감사드린다. 멋진 경험이었다. (아이리쉬 뒷이야기는 에필로그에서 전달한다)
다음 이야기의 무대는 ‘월드매치플레이챔피언십’이다.

[글·사진=최유경 대한당구연맹 이사·심판/Dream Stream CEO]
▲필자 약력
△대한당구연맹 이사
△Violinist
△Dream Stream CEO
△(주)루카테크놀로지 감사
△전)배재대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