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5일 밤, 야스퍼스가 32번째 월드컵 우승컵을 들어 올린 그 시각. 베트남 호치민시의 거리는 여전히 활기로 가득했다. 시차는 한국과는 2시간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도시의 리듬은 우리보다는 꽤 많은 차이로 유연했다.
주말의 끝자락, 사람들은 노상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맥주잔을 기울이며 일상의 피로를 씻고 있었다.

그 속에서 한 장면이 필자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번화한 상권 한가운데, 다닥다닥 붙은 상점 사이로 들어선 한 건물 내부. 입구라 부를 만한 문은 없었고, 출입문이 있어야 할 벽면은 통째로 뚫려 있었다. 말 그대로 ‘문 없는 당구장’.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다. 내부는 마치 오래된 식당처럼 바닥 타일이 깔려 있었고, 그 위에 5대의 당구대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국제식 중대였다(우리가 흔히 아는 중대보다는 사이즈가 조금 크다).
그 당구대 위에선 몇몇 현지인들이 땀에 젖은 셔츠를 벗어젖힌 채 진지한 표정으로 큐를 들고 있었다.
그들의 큐가 겨냥한 종목은 일명 ‘빠뜨리브레(빠르티 리브르/Partie Libre)’. 캐롬 당구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이자, 프랑스어로 ‘자유 경기’를 뜻하는 종목이다. 우리가 익숙한 4구와 방식이 비슷해, 당구 초보자일지라도 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이 장면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지 생경한 풍경이라서만이 아니다.
베트남은 당구, 특히 포켓볼의 인기가 높은 나라다. 그런 가운데서도 호치민시는 유독 캐롬 종목에 강한 애착을 보여온 도시다.

그 중심에는 ‘호치민 3쿠션월드컵’이 있다. 지난 수년간 호치민당구연맹 주도로 이 국제대회를 개최하며 도시 전체에 캐롬 붐을 불러일으켰고, 그것이 생활 문화 속으로 스며들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거리 골목 안에서 마주친 ‘문 없는 당구장’과 ‘빠뜨리브레’. 이 풍경으로 인해 호치민시가 왜 베트남 캐롬의 심장이 됐는가를, 새삼 깨닫는다.
당구장과 거리가 맞닿은 이 ‘열린 공간’에서, ‘딱’ 하는 공치는 소리와 수초마다 울리는 오토바이 경적 등의 거리 소음이 뒤섞여 들여본다. 그럼에도 불구, 캐롬당구를 즐기는 호치민 동호인들에게는 당구대 놓을 자리만 있으면 ‘오케이’였다.
그야말로, 이 도시는 캐롬 당구와 함께 호흡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런 토양이 있었기에, Q.응우옌 마민껌, 쩐꾸엣찌엔 등의 아마추어-프로 무대에서 정상권으로 인정받는 선수들이 과거부터 현재에도 등장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호치민=방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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