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트라이아웃 통과 직후 인터뷰 때, ‘시합장에서 자주 뵙자’고 큐스포츠뉴스와 얘기 했었죠. 그런데 계속 성적이 안 나서 마주칠 기회가 없었어요. 드디어, 그 말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아 꼭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16일 오후, ‘우리금융캐피탈 LPBA챔피언십 2025’ 64강전이 끝난 직후, 이선영은 곧장 큐스포츠뉴스에 연락을 주며 이렇게 운을 뗐다. 수화기 넘어 환희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로, 그의 목소리 톤은 매우 밝았다.
이선영은 이날 LPBA 챔피언 출신 강지은(SK렌터카)을 상대로 25:18(18이닝) 승리를 거두며 당당히 32강에 올랐다. 긴 슬럼프 끝에 마침내 본인의 존재를 입증해낸 순간이었다.
이선영은 지난해 ‘2024 LPBA 트라이아웃’을 전체 1위로 통과하며 주목을 받았다. 재수 끝에 이룬 결과였기에 그 의미는 더욱 남달랐다. 그 직후 당시 본지와의 인터뷰 후 본지와 그는 “프로 무대에서 꼭 자주 인사하자”고 했으나, 시즌 내내 이어진 부진은 그 말을 지켜내기 벅차게 했다.
데뷔 시즌 이선영의 최종 순위는 121위. 강등(방출) 댜상자로 분류돼 트라이아웃을 통과해야만 차기시즌에 선수자격을 유지할 수 이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나름 치열하게 준비해 맞은 데뷔 시즌이었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그에게 찾아온 건 단순한 부진이 아니었다. “자존감이 정말 많이 무너졌어요.” 직전 시즌을 돌이켜본 이선영의 말이다.
하지만 그 시기, 같은 동네(서울 개봉동)에 거주하는 김병호(하나카드)가 ‘멘탈코치’이자 기술 스승으로 곁에 있어 다행이었다.
이선영은 그의 조언과 트레이닝 아래, 하루 12시간 이상의 연습을 자청했고, “당구감옥”이라 부를 정도로 강도 높은 루틴을 견뎌냈다.
어떤 날은 하루 연습의 방점을 제대로 찍기 위해서, 다음날 새가 떠오르는 새벽 5시까지도 큐를 놓지 않았다고 한다.
“힘들긴 해도, 제가 선택한 길이에요. 힘든 만큼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그리고 지금, 이렇게 결과가 따라와주니… 너무 벅차요.”
그러던 1년 동안, 그의 애버리지는 0.6 초반에서 0.7 중반까지 뛰어올랐다. 그러면서, 평소 친분이 있던 대한당구연맹 3쿠션 상위랭커인 정예성과도 꾸준히 교류하며 감각을 조율했고, 정예성의 소개로 인연을 맺은 허진우 선수로부터는 실전 운영과 멘탈 관리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의 조언을 받았다.
이런 자가성찰과 발전을 하던 1년여의 노력 끝 무렵. 원래대로라면 2025-26시즌에 앞서 트라이아웃을 다시 거쳐야 했던 이선영에게 프로당구협회(PBA)는 기회를 줬다. 그의 가능성을 눈여겨본 협회가 이선영을 우선등록선수로 분류, 트라이아웃 없이 올시즌을 나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이선영은 이번 시즌 개막전에서, 그 믿음에 보답해냈다. PPQ라운드에서 고바야시 료코(일본)를 17:13, PQ라운드에선 최지선과 접전 끝에 14:13로 1점차 신승을 거두며 64강에 올랐다. 그리고 해당 경기에서 LPBA 우승 경력을 지닌 강지은과 맞붙었다.
“긴장해서 숨이 찼을 정도였어요.” 이렇게 64강전을 회상한 이선영은, 이날 1.389의 높은 애버리지를 기록하며 승리를 완성했다. “뱅크샷을 치기 좋은 포지션이 자주 나왔고, 운이 따라줬다”는 것이 이선영의 자체 분석이었지만, 그것은 1년 동안 그가 갈고닦은 내공이 만든 결과이기도 했다.
32강 진출은, 이선영에게 곧 세트제 경기 첫 경험의 장이기도 하다. 그 새로운 경험의 무대에서 마주칠 상대는 2024 트라이아웃 동반합격자인 우휘인. 17일 오후 3시30분 경기로 예고됐다.
“서로의 스타일을 잘 알아요.”라면서도, 이선영은 “초반에 치고 나가는 힘이 제 장점이니 세트제에서 잘 활용해 보겠다”고 전략을 내비쳤다.
이 말로 인터뷰를 마친 뒤, 이선영은 본지에 한 장의 셀카를 보내왔다. 뒷배경은 당구장. 경기가 끝난 지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던 시각, 그는 이미 다음 경기를 대비한 훈련을 시작할 참이었다.

이를 전하면서 이선영은 마지막 한 마디를 덧붙였다. “작년엔 1회전에서 여러번 탈락하고… 그런데 이번엔 제가 32강까지 올라왔네요. 이 기회는 하늘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끝까지, 후회 없이 도전해 보겠습니다.”
한 시즌의 눈물이 녹아 있는 선수의 절절한 심정이 담긴 말이었다.
[이상연 기자/큐스포츠뉴스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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