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2025 남원 전국당구선수권대회’ 포켓볼 남녀 개인전 결승에 오른 이들 가운데, 세 명의 선수. 모두 각자의 이유로 장시간 우승의 문턱에서 멈춰섰던 시간이 있었다. 이번 결승은, 그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반등의 순간이었다. 시리즈 ②편의 주인공은 19개월 만에 전국대회 금메달을 목에 건 24년차 베테랑, 서울시청 소속 임윤미 선수다.
“우승만 없었을 뿐이에요.”
이 말을 꺼낼 때, 임윤미(서울시청)는 담담했다.
지난 16일, 남원 스포츠타운체육관. 그녀는 포켓10볼 여자부 결승에서 이하린(인천광역시체육회)을 세트스코어 8:1로 꺾고 1위에 올랐다. 이번 금메달은 2023년 11월 대한체육회장배 이후 19개월 만의 전국대회 우승이었다. 그리고 남원에서는 첫 개인전 우승이기도 했다.
“그간 (전국대회) 우승이 없었던 건 맞아요. 그런데 저는 항상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거든요. 톱 랭킹을 유지했고, 국가대표로 국제대회도 꾸준히 나갔어요. 그냥, 우승만 없었을 뿐이에요.”
그 말은 어떤 변명도, 겸손도 아니었다. 말을 이어가는 임윤미의 눈빛은 확신으로 또렷했다. 기량, 체력, 태도 모든 면에서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버텨온 24년. 지금 그 궤도는, 결과와 상관없이 정당했으며 올곧게 정진해왔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하루를 밀도 있게 채우는 루틴
“하루 1시간 러닝, 8시간 연습… 그게 요즘 저예요.”
그의 자신감은 루틴에서 나온다. 임윤미는 요즘 아침형 선수다. 새벽에 일어나 1시간 달린다.
“예전엔 밤에 운동했어요. 그런데 자꾸 빠지게 되더라고요. 후배들이 놀러오고, 저녁 먹고 하면 ‘에이, 오늘은 쉬자’가 되니까요. 그래서 아예 아침으로 바꿨어요.”
달리고 나면 당구장으로 향한다. 하루 6시간에서 8시간, 큐를 잡는다.
“연습량만큼은 누구한테도 안 밀려요. 그건 진짜 자부해요.”
체력 관리도 치열하다. 다이어트보다도 지구력 향상이 목표다.
“집중력이 경기 끝까지 유지되려면, 몸이 따라줘야 하잖아요.”
그렇게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 하루를 채운다. “하루가 빠듯하긴 해요. 그래도 저는 그게 좋아요. 그게 저니까요.”
딸들 이야기 앞에선 조금 멈칫
그렇게 단단히 쌓아올린 루틴을 설명하던 그녀는, 다음 질문 앞에서 잠시 말을 멈췄다. 가족 이야기였다. 인터뷰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옮겨갔다.
그러자 임윤미의 표정이 조금 바뀌었다.
“큰 애는 이제 대학교 1학년이고, 둘째는 초등학교 6학년이에요. 두 딸 다 여자애예요.”
웃으며 말했지만, 바로 뒤에 조용한 한숨이 묻어났다.
“사실… 주말마다 거의 아이들이랑 못 있어요. 대회나 연습 일정이 많다 보니까요. 이번에도요. 남원 대회 공지 나오기 전에, 가족 여행을 계획해 뒀었거든요. 근데 일정 뜨는 거 보고, 그냥 취소했죠.”
가족에게 미안함을 느끼지만, 달리 방법은 없다.
‘선수’로 사는 것과 ‘엄마’로 사는 것 사이에서 그녀는 늘 고민하고 있다.
“그 사람한텐, 저는 지금도 배우는 입장”
가족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남편 이야기로 이어졌다. 임윤미의 남편은 정영화 선수다. 대다수의 당구인들이 알다시피, 그 이름은 한때 국내 포켓볼계를 대표했던 전설적인 존재다.
지금은 남편의 입상이 조금 준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그녀에겐 가장 신뢰하는 스승이다.
“남편이요? 저보다 훨씬 선배잖아요. 정말 많이 배웠어요. 지금도 배워요. 당구만 놓고 보면, 저는 아직도 그 사람한테 배우는 입장이에요.”

말 끝에 웃음이 스쳤지만, 그 안에는 존경과 애틋함이 함께 있었다.
선수로, 배우자로, 서로의 삶을 오랫동안 지탱해온 시간들. 포켓볼이라는 큐 하나로 연결된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지금도 큐를 잡고 있다.
“이번엔, 제가 저한테 주는 선물 같아요”
인터뷰의 마지막은 다시 이번 대회 이야기로 돌아왔다. 임윤미는 경기 전날까지도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고 했다.
“몸이 무겁고, 좀 다운됐었어요. 이상하게 자신감도 좀 떨어지고…”
그래서 이번 결과가 더 뜻깊다.
“운이 좀 따라줬던 것도 맞고요. 그렇지만, 그동안 제가 해온 걸 제가 아니면 누가 알아주겠어요. 그래서 이번 우승은… 그냥 제가 저한테 주는 선물 같아요.”
결승전 직후에도 담담했고,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엔 이렇게 덧붙였다.
“앞으로도 꾸준히 달릴 거예요. 그게 제 스타일이에요. 멈추지 않고, 계속.”
다음은 시리즈 마지막 ③편, 권호준 선수의 이야기다.
2년 전, 같은 남원에서 우승을 경험했던 그는 다시 정상에 섰다. 그가 말하는 “기억도 안 난다”는 그 한마디 속엔 어떤 시간이 들어 있었을까. 그 이야기를 전한다.
[남원=이상연 기자/큐스포츠뉴스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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