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이닝 접전 끝 선발전 막경기 승, 생애 첫 태극마크
테니스 선수 좌절 뒤, ‘공 다루는 재주’ 인정받아 당구로
대대 35점, 연습구장서 40점대와 선발전 대비 스파링
벽처럼 느껴졌던 03년생 또래들 제치고 세계무대로
“여권 바로 갱신해야 해요. 2020년에 만료돼서 못 했거든요. 원래는 여행 갈 때 하려고 했는데, 내일 바로 가서 해야겠네요.”
정상욱(21·서울·2003년 12월생)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오는 9월 26~28일 스페인 무르시아에서 열리는 ‘제16회 세계주니어3쿠션선수권대회’ 출전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19일 김포 페리빌리어드에서 열린 대한당구연맹 주최 선발전 최종전에서 44이닝 혈투 끝 40:35로 승리하고, 생애 첫 태극마크를 달자마자 터져 나온 소감이었다.
보통은 귀찮고 번거로운 여권 갱신이지만, 그에게는 오히려 가장 달콤한 절차였다.
“큰 영광이죠. 신기하고요” 태극마크를 품은 감회는 남달랐다. 사실 그는 원래 테니스 선수를 꿈꿨다. 중학교 말 무렵까지 테니스를 즐기다 선수 진로를 모색했지만, 나이가 늦었다는 이유로 길이 막혔다. 대신 주변에서는 “공을 다루는 재주가 좋다”는 평가가 많았고, 평소 당구를 즐기던 아버지의 권유와 본인의 의지가 합쳐져 결국 고등학교 때부터 당구로 전향했다.
군 복무까지 일찍 마친 그는 이제 예비역 신분으로 큐를 잡고 있다. “총 4년의 당구 경력에서, 군 시절을 제외하면 실제로 큐를 잡은 시간은 2년 반 정도”라고. 이처럼 짧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았고, 이날의 영광을 얻었다.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나태형, 김한누리 같은 제 또래 친구들이 늘 큰 벽이었습니다. 대회에 나가면 예선 두 판 하고 집에 오는 게 다였어요.” 그는 지는 걸 누구보다 싫어했고, 그래서 당구장에서 밤을 새우며 연습했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그에게는 큰 벽, 대단한 또래들이 올해는 놓친 태극마크를, 그가 따낸 것이다.
이번 선발전을 앞두고 그는 서초 ‘비쿠라운지’와 방배 ‘롤링스톤’ 등 자신의 연습구장에서 40점대 선수들과 스파링을 이어가며 실전을 대비했다. 그의 대대 점수는 35점. “어려운 상황이 진짜 실력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 과정에서 얻은 경험이 이번 역전극에 큰 힘이 됐다.
그는 훈련 과정에서 도움을 준 여러 이름을 빼놓지 않았다. 첫 스승 박수영, 원포인트 레슨을 건넨 김광현 등이다.
서울연맹 소속 주니어로 태극마크를 단 것도 각별했다. “서울연맹 소속이라는 것 자체가 큰 영광입니다. 지도자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러면서 소속 서울연맹의 김동룡 선수에게서도 집중적인 피드백을 받았다며 “못 치는 부분을 짚어주며 큰 도움이 됐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그리고 가족에 대한 고마움. “부모님은 제가 의심할 때도 단 한 번도 저를 의심하지 않으셨어요. 특히 할머니가 늘 믿어주셨습니다. 지금 이 자리까지 온 건 전적으로 아버지와 할머니 등 가족들 덕분입니다.”
첫 해외 무대를 앞둔 설렘은 포부로 이어졌다. “외국 선수들과 경쟁한다는 것 자체가 큰 영광이에요. 금메달이면 좋겠지만, 무엇보다 메달은 꼭 따오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을 당구선수의 길로 인도해 준 아버지에게 진심을 전했다.
“항상 대회 때 차로 같이 다니며 멘탈 잡아주신 아버지. 이제는 아들이 주니어 국가대표가 된 만큼, 남들 앞에서 당당히 자랑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웃음).”
[김포=이상연 기자/큐스포츠뉴스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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