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실력보다 더 높은 성적(8강)이죠. 하하. 초제한 룰 없어서 편하게 쳤더니…”
며칠전 카타르 도하에서 도착한 낭보에 한국 스누커계가 화들짝 놀랐다. 한국 스누커 사상 최초 ‘세계스누커선수권’ 8강진출 소식이었다. 그 주인공은 ‘한국 스누커 강자’ 허세양(39)이다.
▲32강까지 ‘세계챔피언’ 포함 ‘무실점 승’ 질주
지난 2018년 중국에서 귀화해, 국내 스누커판을 휘어잡던 허세양이 태극마크를 달고 지난 5일 카타르 도하에서 시작된 ‘2023 세계스누커선수권’(세계선수권)에 참가했다.
그는 예선~32강까지 3경기를 ‘무실점 승리’(프레임스코어 4:0)로 내달렸다.
조별예선 J조에서 독일의 알렉산더 비도우, ‘2021 세계선수권 챔피언’ 아산 람잔(파키스탄)마저 ‘무실점 승리’의 제물로 삼은 허세양이다.
이렇게 2연승하며 조별예선을 1위로 통과한 허세양은 본선(32강)서 이라크의 오마르 알리마저 프레임스코어 4:0으로 꺾었다.
여세를 몰아 그는 16강서 미나 아와드(이집트)를 5:1로 돌려세우며 역사적인 한국 스누커 최초 세계선수권 8강진출을 이뤄냈다.
아쉽게 8강에선 패배(중국 웨이층카에 2:7)했다. 그러나 허세양은 “만족한다”고 했다. 12일 본지와의 전화통화로 밝힌 소감이었다. 국내에선 실력자로 정평이 난 그였지만 세계무대의 높은 벽을 익히 알던 터였다고.
그래서 허세양은 이번 세계선수권 8강이 “내 실력보다 높은 자리였다”고 자평했다.
▲71세 스누커 선수 박승칠 “역사적 쾌거”
“(세계선수권 8강은)스누커 불모지 한국에겐 역사적 쾌거죠. 힘들고 어렵게 기적과도 같은 성적을 낸 후배 허세양 선수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네요.”
국내 최고령 스누커 선수 박승칠(71)은 후배의 ‘기념비적인 사고’ 소식으로 차오른 기쁨과 흥분감을 숨기지 않았다.
박 선수에 따르면, 공을 놓고 칠 테이블조차 전국을 싹 흝어도 10대를 겨우 채우는 한국 스누커계의 현실이다. 서울 3, 안산 3(2월 해체예정), 부산 2, 광주 1, 목포 1대씩 스누커 테이블이 비치된 것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이어 박 선수는 “당구가 ‘2030 도하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상황”을 짚으며, 메달이 걸린 전종목 균형발전이 필요하다고도 꼬집었다. 특히, 스누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초제한 룰, 오래된 테이블… 국제경쟁력에 도움 될까?”
한편, 기자에게 세계선수권 8강 진출 소감을 밝은 톤으로 얘기하던 허세양은 톤을 조금 가라앉힌 뒤 한국식 ‘초제한’과 낡은 테이블에 대한 생각을 털어놨다.
먼저 ‘초제한’이다. 공격권을 가진 선수가 40초 내 공격해야 하는 룰이다. 이는 국제대회에선 찾아볼 수 없는 룰이라는 게 허세양의 설명이다.
“저는 나름 여러 국제대회를 경험했는데, 그 어느 스누커대회에서도 공격시간을 제한하는 걸 보고들은 바 없다. 3쿠션은 공 3개로 경기한다, 포켓볼은 많아야 11개. 스누커는 공이 22개다. 샷에 앞서 생각해야 할 경우의 수가 그만큼 많아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종목에 초제한을 두는 것에 의문이다.”
한국선수들의 좋은 성적을 위해 국제룰과 국내룰이 같았으면 하는 허세양의 바람이었다.
또 구매일자가 오래된 테이블로 인해 경기에 지장받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공이 제가 생각한대로 안 나갈때도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허세양은 앞서 선배 박승칠의 주장과 궤를 같이하는 말을 남겼다. “스누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 이는 “국제경쟁력 상승 차원에서도 꼭 동반돼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도 덧붙였다.
한국 스누커의 역사의 페이지에 한 획을 그은 허세양, 이런 역사적 쾌거 뒤편에는 남모를 여러 고민들이 묻어 있었다.
[이상연 기자/큐스포츠뉴스 취재부장]